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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IBM의 씽크패드 S30은 컬트가 되었을까
흰둥이 2006-02-25 오전 6:17:33




왜 IBM의 씽크패드 S30은 컬트가 되었을까

@mail : 흰둥이


■ 프로슈머와의 소통을 위해

  상식을 늘리기 위해 상식을 공부해야 하는 기묘한 현실 속에서 "일반 상식", "종합 교양" 처럼 왠만한 대학교 전공 서적 두께의 책들이 수험서를 가장하여 버젓이 팔리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과학 등에 이르기까지 수천년간 축적된 인류의 지적 자산을 책 한권에 수록하고 있죠. 출판사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내용만 잘 추려내면 편하게 갈 수 있는 아이템이긴 하지만, 매해 개정판을 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넷에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는 용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지금 이 글이 올라가 있는 노트기어의 "기어(gear)", 최근 많이 쓰이고 있는 가젯(gadget) 뿐만 아니라 우리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하나를 들어 보자면, 작년 한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용어였던 "지르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지름신"을 유일신으로 추앙하는 종교적 단계인 "지름교"이나 아직 초보적인 신앙 단계인 "뽐뿌질"에 이르기까지, 현상만을 놓고 보면 마치 열병에라도 걸린 듯 구매결정 버튼을 클릭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종 "지름" 관련 게시판과 최저가 검색 비교 사이트 검색, 첨부할 수 있는 쿠폰은 몇가지인지, 무이자 할부 개월수는 어느 쇼핑몰이 유리한지, 철저하게 고려하는 냉철한 이성이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클릭하는 신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곧 "파산신"이라는 지름신의 두얼굴과 맞닥뜨리게 되겠지요. (^^)



  국내에 미래학자로 알려진 엘빈 토플러의 기념비적인 저작 "제3의 물결"에서 언급된 프로슈머(Pro-Sumer)는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제품 개발을 비롯한 생산과 유통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능동적 소비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특히 급발전한 우리나라의 디지털과 인터넷 기술과 결합되면서 앞서 언급한 새로운 소비(구매)자들의 모습을 설명하기에도 좋은 용어이기도 하지요. 노트북을 비롯한 각종 IT 기기(gear, gadget)의 경우에는 마케팅적인 측면이 크게 앞서 나가, 이미 많은 기업은 제품 출시 직전 제품 홍보나 판매의 바람몰이를 위해 대규모의 체험단을 운영하면서 프로슈머의 적극적인 참여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체험단 활동을 통해 양산된 사용기들은 갓 출시된 제품 관련 정보를 풍성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개발 과정에 있어서 프로슈머와의 의사소통 구조는 차단되어 있습니다. 즉, "사고 싶다!"는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만들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지요. 다소 길게 돌아왔지만, 이 글이 의도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한 시대를 풍미한 노트북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부활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개발자와 사용자 간의 보이지 않는 교감을 들춰보기 위함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 관계를 오픈시켜, 개발자와 사용자(End User)간 만남의 자리를 상시적으로 노트기어에서 마련하도록 자극하는 것입니다.

■ 왜 IBM의 씽크패드 S30은 컬트가 되었을까



  컬트(cult)라는 단어는 영화계에서 자주 쓰입니다. 영화에서 말하는 컬트란 소수 관객들에 의해 열광적으로 지지되는 영화를 의미합니다. 컬트 영화의 특징으로는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난해한 줄거리나, 영상이나 표현 등의 비 대중성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 현상도 아닌 노트북에 왜 컬트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어도 어색하지 않은 걸까요? 여기에서 보여지는 광적인 열기는 당연히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비춰집니다. 흔히 컬트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하곤 합니다.

"그 딴 영화는 공짜표 줘도 안본다."
"뭐냐 이해가 안된다. 뭘 전달하는 영화냐?"
"니들 변태 아니냐?"

  이 사람들의 눈과 입을 빌려 S30을 말해보면,

"Pentium III, 그것도 코퍼마인 600Mhz 줘도 안쓴다."
"이게 뭐가 좋냐? 그래픽 카드도 첨 들어본 4메가짜리네. 카트는 돌아가냐?"
"니들 변태 아니냐?" (-.-;;)

  컬트란 표현을 전혀 다른 분야인 노트북을 다루면서 언급하게 되는 이유는 일본 IBM이 2001년 5월 23일 출시해 이듬해 3월 단종시킨 ThinkPad i Series S30을 둘러싼 우리나라 노트북 사용자들의 관심이 컬트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문화적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S30이 단종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S30을 구하기 위해 노트북 커뮤니티 장터나 일본 옥션을 검색하고 있고, 간혹 장터에 S30 매물이 등장하면,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 둘 다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 간에 험악한 설전이 벌어지곤 합니다.

  팔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트북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면서, "제 값"을 받고 싶어하고, 사고자 하는 사람은 가격적인 부분을 지적하지만 (시간을 끄는 사이 노트북은 다른 사람이 채가는 일이 많죠,) 사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고, 둘다 이해가 가질 않는 사람은 S30이 또래 친구들과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노트북의 사양이 현격히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동급 노트북 보다 "훨씬 높은 값"에 거래가 되는 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이 삼자 간의 밀고 당기기를 보고 있노라면, S30에 컬트란 수식어가 제법 어울린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 못마땅하고 불편하기 서울역에 그지 없는 IBM ThinkPad i 시리즈 S30의 탄생 과정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2001년 5월 인텔은 0.18μm 프로세스에 의해 제조된 코퍼마인 코어의 펜티엄 프로세서를 다급하게 공개합니다. 출시를 전후한 시기, AMD와 특히 지금은 CPU 사업을 접어버린 트렌스메타의 크루소(Crusoe)의 전력 절약 기술(Long-Run)이 인텔에게 있어 큰 위기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인텔이 얼마나 급했냐 하면, 바로 다음달 0.13μm 공정의 투알라틴 코어를 장착한 본격적인 모바일 CPU인 펜티엄-M을 내놓은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인텔이 동 클럭 크루소 CPU의 2배 이상의 성능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2/3 전력 소모량을 자랑한다는 말은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인텔의 이런 자신감을 실현한 대표 선수로 선보인 제품이 S30입니다. (같이 공개된 노트북 중에는 저전압판 펜티엄 프로세서를 장착한 소니의 바이오 SR9M/K도 있었습니다) 인텔의 프리젠테이션 당시 이미지컷으로만 소개된 S30은 다음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식으로 무대에 데뷔합니다.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었지만, Windows ME를 기반으로 처음 등장한 S30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다소 의아한 점이 발견됩니다. i, X, T, A와 같이 독립된 라인업이 아닌 i series 이하 S30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점이 그것이죠,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그 이름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굳이 혈통으로 따지자면 i series와 이복 형제나 다름없는 S30이지만, S30이 태어나기까지 산파 역할을 했던 것이 1124 모델 240Z입니다. (240Z라 하니, 저에게 미국 드라마가 가득 담긴 히타치 하드를 넘겨 주고 가신 분이 생각나는 군요. ^^;;)



  2000년 1월 공개된 240Z는 초저전압판 Pentium III 500MHz CPU 탑재를 통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배터리 절약 성능과 퍼포먼스를 양립(트렌스메타의 크루소도 경합 상대였지만 부동 소수점 연산과 코드매핑으로 인한 치명적인 퍼포먼스 저하라는 단점 때문에 탈락하고 맙니다.)시켰으며, 막강한 풀데이 배터리, 10인치 XGA급 패널 등 B5급 서브 노트북이 갖춰야 할 장점을 고스란히 담아 냈다는 점 때문에 지금도 ThinkPad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S30 만큼이나 소유하고 싶은 기종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S30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240Z의 장점을 고스란히 받아들임과 동시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S30 하면 처음 떠오르는 것은 역시 상판의 미라지(Mirage) 블랙 코팅입니다. "거울로 비춰보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미라지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상판이 주는 아름다움은 관리가 어렵다는 불평에도 불구하고 매니아들의 소유욕을 자극합니다. (요즘엔 흔해졌지만 -.-;;) 이는 기업용을 겨냥한 ThinkPad 블랙에서 느낄 수 없는 도도한 사치스러움이기도 하구요. 외적인 상처에 약한 듯 보이는 S30의 상판은 마그네숨을 혼합한 알루미늄 합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외유내강이라고나 할까요? 가녀린 여인네처럼 느껴지지만, 의외로 철녀인 아가씨가 S30입니다.

  여기서 본질적인 고민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최근 들어 노트북에 엔터테인먼트적인 기능이 크게 강조되고, 사용하는 즐거움과 함께 소유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지만, 본질적으로 노트북은 PC를 이용한 업무를 근무지 이외에서도 처리할 수 있도록 고안된 도구입니다. 노트북 사용자들의 다양한 환경과 성향이 고려될 수 있겠지만 스크래치에 민감한 미라지 블랙 코팅의 S30(사용자의 마음에 그어지는 스크래치가 더 크겠지만)은 관리의 어려움이라는 부가적인 부담을 사용자에게 강제한다는 점에서 현지에서도 우호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S30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숭배(cult)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형제인 ThinkPad 블랙은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S30 = 미라지 블랙"이라는 광범위한 사용자들의 인식, S30은 스펙에 해당하는 성능과 가격적인 합리성을 비교해야 하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치 신기루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꿈꾸는 자들을 무릎 꿇게 만듭니다. 물론 여기에 현혹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지요. ^^;;



  바닥면은 간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단부에 장시간의 동작을 보장해주는 기본 배터리로서는 다소 거대해 보이는 배터리를 비롯해, 쿨링팬에 이르기까지 흩어짐을 찾을 수가 없죠, 바닥면 역시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을 기반으로 CFRP(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를 채용해 노트북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상판의 도장과 아울러, S30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18.25mm의 키피치를 실현하기 위해 도입한 『오버 행』키보드, 키보드의 틸팅을 돕는 스윙백 핀 매카니즘, 그리고 비록 옵션이지만, 전일 작업에도 넉넉한 동작 시간을 보장해주는 풀데이 배터리 등입니다.



  키 피치를 늘리기 위해 개발자들이 선택한 방법은 다소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키보드의 부분적 확장이었습니다. 가오리(전 볼때마다 텔레토비 같은 느낌을 받지만)에서 영감을 얻은 이 디자인은 상판의 귀(-.-;; 무선랜 모델의 경우에는 안테나가 내장)와 매칭되어 보는 사람에 따라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기형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큽니다. 크기가 비슷한 Sony의 10인치 서브 노트북인 SRX 모델의 키피치는 17mm로 S30과의 차이는 1.25mm. 수치상으로는 적지만, 1~2mm 차이로 느낄 수 있는 편의성은 쉽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 자판(다른 아시아 지역에서 판매된 영문 키보드 역시 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쾌적한 입력이 가능하며, 다소 과장되게 말하자면 마치 문자가 그려진 터치 패드에 손가락을 갖다 대는 듯한 불쾌감을 주는 여타 노트북과 달리 적당한 반발력과 공간감이 주는 손맛은 서브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서브 노트북 키감을 자랑했던 240Z 이상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ThinkPad 노트북의 상징인 빨간 콩, 포인팅 스틱 역시 입력의 편리함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10인치 서브급에서의 키보드 공간 확보는 키배열 만큼이나 중요합니다. S30의 경우에는 확장판 포인팅 스틱을 탑재하고 있으며,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죠. 한번 포인팅 스틱의 맛을 본 사용자들은,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포인팅 스틱이 없는 노트북을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 중독의 늪은 깊고 깊습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습니다. 터치패드도 좋아요!) 한편으로 빨간 콩을 볼때마다 다른 생각을 갖곤 합니다. 에로틱함이랄까. 주절주절 늘어놓자면 18禁이 되기 때문에 이 쯤에서 상상은 읽는 이의 자유에 맡기겠습니다. ^^;;



  입력을 돕기 위해 고안된 장치는 이것 만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노트북이 뒷면에 경사각을 주기 위해, 싸이 새춤 모양(┌──┐)으로 성의없는 -.-;; 틸팅 장치나 후면경사각을 활용하고 있는 반면 S30은 이 임무를 배터리에 부여시켰습니다. "스윙백-핀"이라고 불리는 이 매카니즘은 평상시에는 상판 위로 수납되어 있다가, 입력이 필요할 때에는 뒤로 젖혀지면서 바닥면으로 고정됩니다. 이와 같은 조작은 본체 바닥면의 팬의 원활한 배기를 돕는 동시에, 입력을 위한 적당한 경사각 유지, 팜레스트가 짧은 단점을 보완해주기 때문에 편리합니다. 기능적인 편의성과 변신 메카닉을 좋아하는 유저들에게는 재미있는 눈요기거리일 수 있지만 이동시나 수납시에 번거로운 수고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은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ThinkPad의 자랑 Think Light는 야간의 타이핑 작업을 위해 고안된 ThinkPad 고유의 기능이지만, 실제 활용할 만한 상황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유용성을 논외로 치더라도, 그렇게 극단적인 암흑 상황에서 문서 작업을 할 상황이 일반인들의 경우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었다는 것에서 점수를 주겠습니다. ^^;;



  앞서 밝힌 것 처럼, S30은 10인치 XGA(1024x768) 패널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S30의 경우 히타치 제품이 장착되어 있는데, 수년이 지난 지금도 밝기는 우수한 편입니다. 아직까지 눈이 부시다고 느낄 정도니까요. 물론 요즘의 고광택 액정처럼 밝긴 하지만 또렷해지기는 커녕, 밝아지면 조금은 멍청해지는 그런 액정입니다. 더군다나 시야각은 최악입니다. 하지만, "그땐 그랬지!"라는 이유로 위안을 찾습니다. 한가지 S30과 이전 모델인 240Z의 일부 모델의 경우 노트북의 화면이 하얗게 변해버리는 백화 현상이 간혹 발생하곤 합니다. 이 경우 재부팅을 통해 복구되기도 하지만, 불규칙하게 나타나기도 하죠. 이 경우 240Z는 일본 IBM에서 무상으로 LCD 연결 케이블을 교체해 문제를 해결했지만, S30은 그런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 역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야후 옥션을 통해 LCD 케이블을 공수해 교체한 이후로 그와 같은 현상을 다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혹 같은 증상이 나타나시는 분은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S30에는 인텔이 트렌스메타의 느닷없는 반격에 허겁지겁 내놓은 초저전압판 펜티엄 III 600MHz 프로세서(배터리 모드시 300 MHz로 동장 / 내부 코어 전압 0.975V)가 최초로 탑재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Sony의 VAIO C1에 탑재되어 유저들에게 구린소란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한 크루소 CPU가 출시될 당시에는 "기름만 많이 먹고 일을 안하는" 모바일 펜티엄 III 프로세서을 겨냥해 적극적으로 공세를 전개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펜티엄을 이기기 위해 거꾸로 펜티엄인 척해야"하는 코드모핑이란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기름은 덜 먹지만 일도 못하는" 비운의 프로세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트렌스 메타의 신형 CPU인 이피시언이 출시되어 그 격차를 좁히긴 했지만, 이미 인텔은 센트리노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멀찌감치 달아난 후였습니다)

  어쨌든 인텔은 자사의 CPU를 적극 홍보해줄 노트북 벤더를 찾았고, IBM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초저전압판 펜티엄 III를 만난 S30의 기본 6셀 배터리는 X20과 동일한 용량이었지만, 공칭치 6.5시간(일반적 실측치 5시간 후반)이라는 놀라운 배터리 능력을 선보이면서 그 효율성을 증명해 냈습니다. 더불어 이름에서도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9셀 풀데이 배터리와 결합할 경우에는 공칭치 10시간을 상회함으로써 지금의 센트리노 노트북에도 뒤지지 않는 기록을 달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노트북이 아무리 높은 처리 성능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외출시 그 능력을 한계치로 끌어내 사용해야 할 상황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핫스폿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고, 워드나 엑셀같은 문서 자료를 처리하면서 MP3를 듣는다던지, 아니면 새로 받은 Divx 영화를 감상하고 있을 것입니다. 데스크탑 CPU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모바일 CPU는 스피드 스텝과 같은 클럭 조절 기능으로 손이 덜가는 작업을 처리할 때에는 그 만큼의 자원을 대기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기본 배터리로 6시간을 넘길 수 있는 노트북은 지금도 극히 일부의 서브급 모델을 제외하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금도 S30이 매력적인 이유는 사용자들이 일반적으로 직면하는 작업 처리가 가능하면서, 동시에 넉넉한 배터리 시간을 보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1년 Win ME를 운영체제로 출시된 S30은 Win 2K Pro 모델(2639-4WJ/42J), Win XP Home 모델(2639-RAJ/R3J/RRJ/R5J)을 마지막으로 2002년 봄 단종되었습니다. IBM은 보도 자료에서 휴대성이 높은 모바일 PC에 대한 시장의 수요의 변화, X 시리즈와 많은 부분에서 중복된 컨셉 등을 감안하여 S30의 안락사를 결정했으며, 많은 부분 시대를 앞서갔던 S30의 장기들을 X 시리즈로 이식한다고는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한참 후에나 지켜지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10인치 서브형에 대한 사용자들의 갈망은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마케터들의 시장 논리에 의해 S30이 단종된 이후에도, S30의 사용자들은 10인치 서브급 모델의 개발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른 제조사들이 서브급에서도 광학 드라이브를 장착하고, 각종 부품들을 다이어트 하면서 1kg대에 근접해가는 가는 사이, IBM이 사용자들을 달래기 위해 풀어놓은 선물 보따리는 겨우 X30 미라지 모델이나, X40과 같은 초전압판 경량형 모델입니다. 사실 S30의 반응을 바라며 의욕적으로 출시한 X40 시리즈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밀레니엄 이전의 ThinkPad 황금기에 대해 추억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기도 했지만, 소니의 바이오 만큼이나 IBM의 ThinkPad는 신선한 발상과 창조적인 기획력으로 다양한 노트북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밀레니엄을 고비로, 구체적으로 S30의 단종 이후 X 시리즈와 T 시리즈의 안정적인 지지에 도취된 IBM은 더이상의 모험을 원치 않게 됩니다. 그리고 사용자들의 원성에 대해 이렇게 화답합니다.

"우리도 만들 수 있다. 다만, 안정성을 희생시켜가면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늘 개발의 최전선을 추구하는 소니와 극적으로 엇갈리는 생각이기도 하지요. 노트북을 이야기 하면서, 보수나, 진보를 편가름 하고 싶지 않지만, IBM의 이러한 스텐스야말로 전형적인 보수의 입장입니다.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감하고 실천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스템에 무리를 주는 급진적인 움직임에는 반대한다. IBM(이제는 일본의 야마토 연구소만을 지칭하는)의 이와 같은 접근은 자사의 12인치급 모델로서는 최경량인 1.16kg 실현한 X60s로 대표됩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읽는 이의 몫으로 남기지만, 이와 같은 점진적인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일반 사용자, 즉 프로슈머들과의 꾸준한 교감이 바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 그렇다면, 실상은 어떠한가



  제가 S30의 첫구매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호된 경쟁을 통해 입양해온 노트북이었지만, 며칠 동안은 씻껴주지도 않고 (세척), 입혀주지도 않은채 (OS 셋팅) 책상 위에 놔두기만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일산 노트북의 OS 설치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죠. 일산 VAIO 셋팅의 험난한 경험에 지레 겁을 먹은 탓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OS 설치를 위해 USB 시디롬을 연결했습니다. 지금은 XP의 기본적인 드라이버 지원이 탄탄하고, 일본 내수 제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당시엔 일본 노트북을 세팅하는 것은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ThinkPad는 미국 IBM 다운로드 센터에서 자신의 기종에 맞는 영문 드라이버들만을 가지고 비교적 쉽게 끝낼 수 있습니다. 설치 드라이버와 과정이 직관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모바일 머신으로서의 S30의 매력을 늘어놓은 이유는 이제부터 감점 요소가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기준을 당시의 노트북과 비교하면 크게 뒤쳐지지 않지만, 현재에도 힘을 잃지 않고 10인치 모바일 머신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S30(중고 시장에서의 높은 가격대가 반증?)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점을 파고 들기 때문입니다.




  0.18μm 공정 코퍼마인 코어의 한계라고 해야할까? 0.13 마이크론 공정의 투알라틴 셀러론이 친구하자고 달려듭니다. 하지만 동클럭의 TM5600 600MHz의 크루소 CPU는 말할 것도 없고, TM5800 867Mhz의 크루소 CPU에 근접한 성능을 보입니다. 부동소수점 연산에선 아예 약 30%가량 앞서 버립니다. 가정이지만, 만약 당시 S30에 선택지 중 하나였던 크루소 CPU가 장착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가 지속될 수 있었을까요? -.-;;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정작 큰 문제는 그래픽 칩셋입니다. Silicon Motion사의 Lynx3DM(4M)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그래픽 칩셋은 리듀스 온(Reduce on)이라는 전력 절약 로직 만이 그의 유일한 장기일뿐 그 이외에 전체적인 성능은 실망스럽습니다. 특히나 게임을 위한 3D 성능은 절망적으로 815EM(800~1000)이나 Rage-M(700~1500)이나 Savage급(1500)은 지금의 ATi X600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더 큰 문제점은 비디오램이 4메가라는 점입니다. 32bit 컬러 미지원으로 인한 어색한 그라이데이션을 느낄때 마다 가슴 한구석에 약간의 후회가 생깁니다. 즐기는 게임이라곤 S30에서도 빛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Mame류의 에뮬 게임이고, 섬세한 디테일을 요하는 그래픽 작업도 하지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S30의 미운점입니다.



  X22급의 Rage-M(8M)과 SVHS 출력은 아니더라도 RGB출력까지는 무리였을까요? 마지막으로 안타까운점은 S30은 기존의 내부 설계를 극복하지 못한채 1394+유선랜 / 무선랜 이란 이상한 라인업을 유지했다는 점 입니다. 어느 노트북 출시 기사에 달린 리플들을 보다가 1394 필요도 없는데 잘 없앴다라는 걸 발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1394의 간편한 네트워킹 기능과, 400mbps의 전송 속도는 usb 1.1 세대의 노트북에게는 시리아의 대규모 수로와 같은 청량감을 선사합니다. iPod을 외장 하드로 쓰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쓰시는 분들만 아실겁니다. (구입 당시에는 X-Jack 방식의 무선랜 카드 보다 전용 1394 PCMCIA 어댑터가 고가였거든요.)

■ S30의 자리 찾기 : 어떻게 써야 할까?

  이 쯤에서 선망의 대상인 S30이 과연 자신에게 적합한 노트북이 될지 아니면 그저 소유욕만을 충족시키는 장식품이 될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제 경우에는 일종의 타협점이었습니다. 소유는 제가 실질적인 사용은 마눌님이 하는 이중적인 시스템이었죠. 늘 한눈팔기에 바쁜 저와 달리 마눌님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의 강행군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학원 강사인 그녀는 자정이 훌쩍 지나 끝나도, 다음날 일찍 일어나 수업 준비를 해야하고 과외라도 있는 날이면 다크써클이 나타나 팬더가 되는 통에 늘 마음이 아프죠. 이동이 많고 직업상 문서 작업이 잦은 편이기 때문에 전부터 찍어온 노트북이 ThinkPad 였습니다. 처음에는 X22 선에서 구하려던 것이 몇번에 걸친 거래 불발과 제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S30으로 업그레이드 되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깜찍한 크기와 아름다운 미라지 광택은 남성 보다는 여성 사용자들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몇가지 작업의 불편함 때문에 S30을 양도했지만, 지금의 사용을 위해서도 많은 수고가 필요합니다. 얼리아답터가 아닌 레잇아답터로 살아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합리적인 소비자들은 여기서 탈락할 겁니다. 뭐하러 그런 삽질을? 이라고 생각하는게 정상이니까요. 워드 작업이나,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지역에서의 무선랜 사용, MP3에 음원을 전송하거나. 디지털 카메라의 이미지를 노트북으로 옮기는 것을 보다 쾌적하게 하기 위해, 노트북의 특성을 일일히 건드려 가면서 세심하게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나갑니다. 만약 X22를 사용했다면, 이미 이전에 기변을 꾀했겠지요. 그만큼 소유욕을 자극하는 노트북. S30 입니다.

■ 두번째 에피소드

  글머리에 이 활용기는 두가지 목적을 위해 작성되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지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카드 결재 승인 문자 메시지에 절규하고, 택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조심스럽게 인증샷을 웹에 올린 다음 공감 받기를 원하는 소비자(사용자)들이 프로슈머로 각성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에 노트기어가 앞장섰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노트북 제조사인 삼성과 엘지가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노트북을 꾸준히 내놓고 있고, 얼마 전부터는 외산 노트북을 성능 면에서도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이면에는 실제 개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나, 디자이너의 힘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들과 프로슈머들과의 진지한 의견 교환의 자리를 노트기어가 제공한다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사건이 되지 않을까요? 새롭게 단장된 사이트와 독자들을 불면증에 시달리게 하는 007 리뷰, 모두들 새 봄을 맞아 노트기어에서 즐거운 노트북 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