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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실력파의 제멋대로 디지탈기행
	비실력파		2006-03-03 오전 12:52:29

안녕하세요 노트기어 가족 여러분!! 비실력파입니다.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20대 후반으로, “대세는 없다 중론은 가라 그냥은 거부한다”를 전자기기의 활용철학으로 삼고 있답니다.
노트기어는 평소 많이 찾아왔지만 이렇게 회원가입해서 사용기까지 남기는 건 처음이네요.
처음 글인 제멋대로 디지탈기행에서는, 2001년에서 지금까지의 디지탈기기에 대한 좌충우돌 스토리가 선보여질 예정입니다. 사진자료는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이 텍스트이기 때문에 별 것 아닌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읽어 주시면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아참, 나상만 장편소설 “혼자뜨는 달”에서 나오는 것처럼 영광은 함평 위에 있다는 식으로 하시면…펭귄 손잡고 나와야겠죠? ^^*
자아, 그럼 사설은 여기서 각설할께요. 그렇다고 각설이타령 부르는 것은 아니고, 제멋대로 디지탈기행 출발합니다!!

1. 일본내수 노트북 구입프로젝트

대개 군필 남자에 한정되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대개 전역을 앞두고는 결심을 적어도 한 가지씩 하기 마련이지요. 군생활에서 누리기 힘들었던 자유를 만끽하자든지, 군무경험을 살려서 보람되는 일을 하자는 결의를 다진다는지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저 또한 예외는 아니라서, 전역하면 무엇을 할까를 구상하고 있었어요.
그 중의 하나가 다음의 프로젝트!!
“일본에 가서 일본내수 노트북을 구입한다”

왜 하필이면 손에 넣고 싶은 것이 일본내수 노트북이었는가, 몇 가지 사연이 있었습니다.
군입대 전부터 일본어로 된 책을 무작정 탐독하면서 일본어를 익히게 되다가 일본어를 컴퓨터 상에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하지만 당시 한국어 윈도우즈 상에서 일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일단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익스플로러나 아웃룩 익스프레스에서 Global IME를 사용해서 일본어 웹문서를 열람하거나 일본어 메일을 주고 받는 그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업무용 소프트웨어에서의 일본어 입출력은 한글 국제판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면 사실상 할 수 있는 방법이 막혀 있었으며, 일본어로 된 소프트웨어의 구동은 NJWIN 같은 것이 없이는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이 없는가 200회 가량 실험을 해 보았지만, 한국어 윈도우즈에서 원하는 것처럼 일본어환경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본어 윈도우즈가 설치되어 있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 문제는 매킨토시의 운영체제인 MacOS라고 해서 그렇게 다른 것도 아니었답니다.
1996년부터 사용해 오던 Power Macintosh 7200/120의 초기도입OS인 MacOS 7.5.3에서는 제대로 된 일본어의 입출력을 여전히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파워입력기에 일본어입력이라는 메뉴가 있긴 했지만, 워드프로세서 전용기처럼 가나를 입력했을 때 한자변환이 가능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요. 당연히 일본어 OS기반의 소프트웨어도 기동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매킨토시에서도 결론은 일본어판 MacOS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일본어판 OS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도 한국내에서는 방법이 없지요. 결론은 하나, 일본에 가서 사는 것밖에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OS만 산다고 해서 해결될 건가요? 그건 아니지요. 밭을 잘 갈아놓았다고 하더라도 씨앗을 심지 않으면 원하는 수확은 얻을 수 없지요. 그래서 씨앗, 즉 오피스 등의 업무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는데 이것을 일일이 사자니 대책이 없는 거예요. 게다가 하드웨어 드라이버도 일본어판이 필요했고, 키보드도 일본어 키보드가 필요해서 신경써야 할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몇백권의 책에다 수많은 소장자료 때문에 데스크탑으로는 곧 공간문제도 생길 것이 분명해져서,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은 오로지 일본내수사양 노트북의 구입뿐이라는 결론이 섰습니다. 그리고 전역후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일하는 산업역군이 되었답니다!!

2. 마른 가시밭길

이번 이야기는 2001년 1월 1일에서 2002년 3월 31일까지 정확하게 1년 3개월간의 기간의 풀스토리입니다.
사고 싶은 노트북 브랜드는 일본의 가격비교 사이트인 카카쿠코무(kakaku.com : 가격(価格)의 일본어 발음이 카카쿠)의 입소문 게시판을 참고해서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정했습니다.

① 가능하면 일본국내 메이커의 제품
② 액정화면은 14.1 ~ 15인치, 해상도는 1024×768일것
③ 여유가 된다면 1400×1050(SXGA+)인 광시야각 액정이라면 더욱 좋을 것임
④ 프로세서 및 메인보드 칩셋 모두 인텔 제품일 것
⑤ 그래픽 칩셋은 ATi 제품일 것
⑥ 빈 메모리 슬롯이 있어서 메모리 증설이 가능할 것
⑦ 광학식 드라이브는 DVD/CD-RW 드라이브일것
⑧ 무게는 3kg 전후
⑨ 오피스 등의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기본 탑재할 것
⑩ 시각표검색, 전자지도, 연하장 작성도구 등 실용소프트웨어가 많을 것
⑪ OS는 Windows ME일 것
⑫ 가격은 되도록 25만엔 이하

그렇게 해서 구입희망 후보는 계속 바뀌어 갔습니다.
일단 후보로 선정된 메이커는 일본전기(NEC)와 후지쯔(Fujitsu)의 2개 회사. 소니(Sony)의 경우는 플래그쉽 모델인 VAIO XR의 그래픽 칩셋이 Savage인데다 OS가 Windows 2000이어서 망설여졌기도 하구요, IBM ThinkPad A30/A30p의 경우는 특유의 FlexView 액정과 강력한 확장성으로 강하게 끌리긴 했지만 44만엔이라는 지나치게 고가에다 초기도입 소프트웨어가 빈약하다는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IBM의 마지막 ThinkPad인 T43p를 사려고 하는데 최근 사정이 갑자기 악화되어 구입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최초로 눈에 들어온 기종은, 액정화면 바로 옆에 스피커가 붙어 상판이 약간 부채꼴 모양을 하는 특이한 모델인 NEC LaVie S LS65H/64DV이었어요. 하지만 곧 탈락하고 말았어요. 4.1kg이라는 엄청난 무게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거든요. 군인시대의 별명이 아무리 Big Guy였다 하더라도 저도 사람인데, 본체무게 4.1kg 노트북이라니!! 이건 좀 아니었기에 결국 신제품이 나올 시즌인 4~5월에 재선정하기로 하고, 당분간은 가격변동 추이를 보면서 언제가 구입적기인지를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봄이 다 가고 여름이 느껴질 무렵, 모델은 두 가지로 압축되었지요.
NEC LaVie C LC750/74DH 또는 Fujitsu FMV-BIBLO NE 7/800W의 두 모델.

(NEC LaVie C LC750/74DH : ascii24.com에서 전재)

(Fujitsu FMV-BIBLO NE 7/800W : : ascii24.com에서 전재)

만일 자금에 여유가 있다면SXGA+ 액정을 채용한 Fujitsu FMV-BIBLO NE 7/1000H도 공략해 봄직하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7월도 막바지로 치닫던 어느 날, 소니에서 VAIO GR이라는 노트북이 등장하기 시작했지요. Windows 2000이 멀티미디어에 취약하다는 점이 걸려서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단단하게 보이는 모습, 기술사양, 가격대, 그리고 예쁜 옆모습이 마음에 들어 계속 돌아보고 싶어지더군요.
그러다가 멀티미디어, 다국어 등에 강한 신개념 운영체제 Windows xp가 등장하면서, SONY VAIO GR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점점 더 늘어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NEC와 후지쯔의 두 모델에 미련이 남아 있었지요. NEC는 일본 최대의 컴퓨터 메이커이자 어릴 때부터 그림책에서 보아온 동경의 메이커인데다, 후지쯔는 탑재 스피커가 파나소닉 제품에다가 초기도입 소프트웨어가 풍부했으니까요. 하지만 최종결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2002년 봄 라인업을 보고 마음을 굳히자고 말이지요.
2002년 1월. 드디어 후지쯔가 BIBLO NE 시리즈의 신제품을 발표했습니다만, 그래픽 칩셋이 인텔인 점으로 과감히 제외시키고, NEC의 라인업도 딱히 이것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안 보여서 결국 최종선택은 SONY VAIO GR5F/BP로 굳어졌습니다.

(VAIO GR5F/BP : vaio.sony.co.jp에서 전재)

이제는 일본으로 가겠다고 선언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드디어 선언의 순간.
일본에 가서 노트북 사오겠다는 말은, 가족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칩니다.
그도 그럴것이, 저 자신이 해외에 갔다온 경험이 전혀 없는데다가 때는 9.11 테러로부터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세계무역센터 붕괴, 그리고 항공기 납치의 악몽이 거의 매일 신문지면과 브라운관을 메우던 때였으니까요.
가족 내에서는 아무도 저의 입장에 동의해 주지 않았고, 그나마 가장 믿고 있던 여자친구와의 관계마저 악화된데다가 직장에서는 급여문제로 인한 말썽마저 생겨버린 상황에서, 이제 고민은 예산도 아니고 마음에 드는 기종도 아니라, 가족의 동의였습니다.

3. 2002년은 베르단디의 해

반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
가족의 입장도 나름대로 근거는 있었습니다.
9.11 테러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데다가, 납북 일본인 문제도 있어 혹시 북한 공작원에 납북될 가능성도 있다든지, 저의 일본어 실력이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에서 안 통할 것이다, 다액의 현금을 갖고 있으면 범죄 표적이 될 것이다는 등등의 반대이유가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나이로 볼 때 성인이 된 것은 분명하나, 군대를 갔다오고도,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벌어 와도 가정에서 성인취급을 받지 못해왔기에 스트레스도 쌓여 있었는데다, 어차피 세상이란 확정된 것이 없는데 저렇게까지 반대하는 것은 무리한 이유라고 생각해서 대항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지요. 여기서 밀리면 영원히 목소리를 못 내고 만다고 생각도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조건으로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불상사가 나더라도 감정 상하지 말 것으로.
결국 여권과 비자를 발급받아서 2002년 3월의 끝자락에 도쿄 아키하바라에 가서, 1년 3개월간의 고민 끝에 선정한 노트북인 SONY VAIO GR5F/BP을 입양하는데 성공했어요. 앞에서 열거한 조건 중 11번 조건을 Windows xp로 변경하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최적의 노트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대가는 소비세포함 20만 4750엔. 특이하게도 이 모델은 출시 2개월 후 실거래가격이 반등하는 경향을 보이더군요. 한국내에 반입할때 관련 규정때문에 세금을 또 냈습니다만. 이 노트북에는 베르단디(ベルダンディー)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이것을 관리자 계정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베르단디라는 이름은 만화영화 오 나의 여신님(ああっ女神さまっ)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여신의 이름에서 따 온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기기의 도입계획도 착착 실행에 옮겨졌습니다.
2002년 도입한 주변기기는 스캐너, 외장하드디스크, 외장 CD-RW드라이브, 흑백 레이저프린터의 4종이었습니다. 스캐너는 CanoScan N1240U를, 외장하드디스크는 DviCO FX-2 외장케이스와 IBM Deskstar 180GXP(용량 60GB)의 조합, 외장 CD-RW드라이브는DviCO RX-1 외장케이스와 TEAC CD-W540E CD-RW의 조합, 그리고 흑백레이저프린터는 hp LaserJet 1000 시리즈로 갖추었습니다.

(스캐너를 제외한 라인업 구성 : 2004년 3월)

각각의 제품을 마련하게 된 사연은 늘어놓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스캐너)
컴퓨터를 놓은 책상과 전원콘센트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되도록이면 전원콘센트를 적게 써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방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2구콘센트부 전원케이블을 부설했고, 노트북은 100V 강압기에 연결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한 번에 3대까지만 이용가능(220V 직결×1, 100V 강압기×1, 강압기에 2대까지 연결가능)했어요. 그러니까 스캐너의 경우는 전원어댑터가 필요한 CCD(Charge-Coupled Device) 방식보다는 저전력으로 USB 케이블로 전원공급까지 가능한 CIS(Contact Image Sensor) 방식을 선택해서 전원콘센트를 아껴야 했고, 더구나 책상이 좁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철거해 놓을 필요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일본과 한국 중 어디에서 구입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이 모델은 2002년 3월말 일본에 가기 전 부터 시중에 나와 있어서 일본과 한국 중 어느 나라에서도 살 수 있었습니다만, 컴퓨터 상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다 사용해야 하는데다 문서전자화 계획을 추진해야 하는데 한국어 OCR소프트웨어, 일본어 OCR 소프트웨어 둘 다가 필요했지요. 문제는 당시 구입가능한 한국어 OCR소프트웨어인 아르미가 한일 양국 할것없이 고가였는데 한국사양CanoScan N1240U에 번들로 들어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일본어 OCR소프트웨어는 일본에서 구입하고 스캐너 본체와 한국어 OCR소프트웨어는 한국에서 조달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가 된 것이지요.

(CanoScan N1240U : 2006년 3월 촬영)

(외장하드디스크)
노트북의 하드디스크는 히타치(Hitachi)의 DK23DA-40F로 40GB, 포맷용량 37.2GB의 것이었습니다. 당시 9.5mm 두께의 노트북 하드디스크로서는 최대급이었지요. 하지만 소장자료(음악, 사진, 데이터베이스화한 각종 전자문서)가 많다 보니 금방 용량한계에 부딪칠 것이 눈에 보였어요. 그리고 CD는 속도가 느린데다 CD-R로의 작성 또한 한 번 만들면 수정이 일절 불가능하니까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기에, 하드디스크의 증설은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하드디스크 메이커의 선정으로는 고민하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맥스터(Maxtor)나 웨스턴디지탈(Western Digital)은 외형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삼성은 낮은 신뢰성 때문에 고생한 적이 많아서 기피되었고 결국 후보는 IBM(지금의 히타치GST) 아니면 시게이트(Seagate)로 압축되었지요. IBM이 선택된 것은, IBM이 하드디스크의 원조라는 이유였지요. 당시 라인업에는 120GXP, 그리고 180GXP가 있었는데 용량을 80GB로 하고 싶었기에 그 전 모델인 75GXP는 자동탈락되었습니다. 120GXP는 플래터당 40GB에 유리재질플래터와 기계식베어링을, 180GXP는 플래터당 60GB에 알루미늄플래터와 유체베어링을 채용한 모델이었습니다.
이 둘을 두고 저와 형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도 하드디스크가 필요하고 형도 그런데, 문제는 형의 컴퓨터의 메인보드가 440BX 기반이어서 60GB 이상 하드디스크를 증설하기가 곤란(이미 확장슬롯을 많이 사용중이라서 RAID 카드의 증설이 불가능한 상태였음)하다는 점도 있었고, IEEE1394 인터페이스 접속시 하드디스크의 최대 인식가능용량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는 점이었지요. 그리고 120GXP와 180GXP에 대해 사용자의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는 것도 어느 하나로 기종을 선정하지 못하게 된 이유였구요. 게다가, 플래터 수와 헤드 수의 비율이 정확하게 1 : 2가 되지 않으면 싫어지는 버릇도 있다보니, 결국 형은120GXP-40GB(플래터 1매, 헤드 2), 저는180GXP-60GB(플래터 1매, 헤드 2)로 하고, 두 다른 기종을 둘 다 써 보기로 했어요. 당시 IBM 하드디스크가 내구성이 약하다는 중론이 많았지만, 현재까지는 완전히 남의 이야기일 따름입니다. 다만 120GXP는 기동시 철사튕기는 듯한 소리가 나고 중간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더군요. 180GXP도 여전하긴 하지만 유체베어링의 관성 탓인가 나는 잡음이 둔탁한 편입니다. 외장케이스는 해외에서도 널리 인정받고 있고 Win/Mac 양대응이 검증된 DviCO FX-2 외장케이스(흰색)로 별 문제없이 선택했습니다.

(IBM Deskstar 180GXP : ascii24.com에서 전재)

(외장 CD-RW드라이브)
노트북을 입양해서부터 광학식드라이브에 문제가 있었던 데에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기본장착 드라이브는 히타치-LG제의 GCC-4080N으로, 슬림형 드라이브로서는 난생 처음 쓰는 것이었지요. 처음에는 CD를 끼우고 빼는데서 불안하더군요. 그리고 기본장착 드라이브는 시스템 복원 등에도 쓰는 것이기에, CD 읽기, 작성, 웨이브 추출 등 다른 업무에 쓰는 기기가 따로 있는 편이 아무래도 나아 보였어요.
처음에는 단지 읽기와 웨이브 추출을 외장 DVD-ROM 드라이브로, 시스템복원을 내장 DVD/CD-RW 드라이브로 할 계획이었지만, 이후 수정해서 외장 CD-RW 드라이브를 주력으로, 내장 드라이브를 시스템복원 및 실내 이외에서의 CD사용에 한정해서 운용하기로 했지요. 눈여겨보던 파이오니어(Pioneer)의 DVD-ROM 드라이브가 공역학적 성능이 별로 안 좋아서 작동시 비행기 날아가는 소음이 심하다고 하길래 포기한 영향도 있었지요.
광학식드라이브는 상당히 선택의 폭이 넓었습니다. 히타치-LG(형번은 HL-DT-ST, 한국내에서는 LG로 발매)는 이미 사용중이었고, 이미 형이 SCSI 방식의 파나소닉(Panasonic) CD-R도 쓰고 있었던 터라 그것들을 제외한 다른 브랜드를 써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후보로 선정된 브랜드는 티악(TEAC), 플렉스터(Plextor), 도시바(Toshiba), 소니(Sony)의 네 브랜드였습니다.
그 중에서 티악이 낙찰된 이유는, 아는 음악전문가가 쓰던 미국의 와디아(Wadia)라는 회사의 하이엔드 CD 플레이어의 트랜스포트 메카니즘이 티악 제품인 까닭도 있는데다가 CD 관련 솔루션으로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쓰고 싶었지요. 그래서 결국TEAC CD-W540E으로 결정했습니다. 타 제품보다 100~200g 가량 무거워서 공진을 최대한으로 억제할 수도 있고, 8MB 버퍼를 채용한 데다가 CD-RW를 프레스 CD나 CD-R과 동일배속으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플렉스터도 그렇습니다만) 등 타 제품에 대한 절대 우위가 확실하니 이것으로 결정하는 것이 최상의 대안일 수밖에요. 그렇게 해서, DviCO의 5.25인치 베이대응 외장케이스 RX-1과 조합하여 IEEE1394 인터페이스로 접속했습니다. IEEE1394의 데이지 체인 접속이 가능한 이점을 살려, 외장 하드디스크는 노트북에 직결, 그리고 외장 CD-RW 드라이브는 하드디스크에 연결하는 식으로 외장형 저장장치 운용의 기본 틀이 탄생한 것이지요. 이 체제는 2006년 2월 현재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있습니다.

(TEAC CD-W540E : teac.co.jp에서 전재)

(흑백레이저프린터)
칼라레이저프린터에의 끊임없는 열망이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백레이저프린터로 가게 된 것은, 역시나 비용 문제였습니다. 지금이야 칼라레이저프린터는 개인사용자들도 쓰고 있는 출력장치이지만 2002년 당시는 손뻗기가 다소 힘든 가격이었지요. 게다가 거주지가 서울이 아니고 지방이라서 유지보수에 손이 덜 가도록 하는 편이 유리했으니까요. 비록 전자관련에서 서울 다음간다고 하는 대구경북권에 살던 터라 타 지방의 분들보다는 사정이 나았지만, 칼라레이저프린터의 도입은 아직 주저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흑백레이저프린터를 사용하기로 하고 기종선정에 들어갔습니다.
30만원대 초반의 흑백레이저프린터 중 리코(Ricoh)와 hp가 최종후보로 되었습니다. 리코는 Win/Mac 모두에서 운용이 가능했고 hp는 윈도우즈에만 대응되었지만, 군생활 때 그리고 직장에서의 리코 복사기와 프린터의 고장 문제로 속앓이를 많이 해왔던 터라 hp로 결정하였습니다. 저가형 잉크젯 프린터에서 hp가 전반적으로 가장 고른 품질을 보여 주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던 터라 흑백레이저프린터도 hp로 하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이 서더군요. 대구 교동시장에서 사 오던 날, 직접 박스를 들고 열차에 탔는데 그 커다랗고 무거운 박스를 무릎위에 올릴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불가사의이긴 합니다만, 그 날의 결정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2년 여름도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노트북 한 대만 덩그러니 있다가 주변기기 라인업이 갖추어지면서 저만의 스튜디오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제 노트북을 흔히 잘 의인화하는데, 홀로 바다를 건너 시집온 베르단디(노트북에 붙여준 이름)에게 친구들이 생긴 것일까요. 아마 그 해, 베르단디도 정말 기뻐했을 거예요. 그래서 2002년은 베르단디의 해였다고 말할수 있네요.

4. 멀티미디어센터 구축

이렇게 해서 구축된 퍼스널 스튜디오는, 인터넷, 연구데이터 및 개인습작의 서고, 학원업무를 위한 편집시스템, 그리고 책상 위의 홈씨어터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습니다만, 여기에 순풍만이 불었던 것은 아니었답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트리니트론과의 악연)
소니에서 트리니트론(Trinitron) 디스플레이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거든요.
트리니트론이라면 최강의 화질과 색감을 자랑하는 궁극의 CRT 디스플레이.
형이 17인치 CRT인 E200을 쓰고 있긴 했지만, 따로 하나를 더 갖고 싶었습니다. VAIO GR5F/BP 내장액정의 성능도 당시로서는 발군의 것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트리니트론의 화질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외부 디스플레이를 연결해서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구입을 추진한 기종은 소니의 E230으로 역시 17인치의 모델이었지었지요. 전체적인 디자인도 다르고, 제조국도 E200이 태국산이었으나 E230은 일본산이었습니다. 특히 전원스위치의 형상이 E230의 경우 베젤 안에 확실히 들어가 있는 식이라서 오른쪽 아래 베젤의 가장자리에 붙어 사용상 주의를 요하는 것과 달리 믿음직하게 보였지요. 36만 5천원이라는 가격은 하루 1천원씩 모아서 1년동안 모은 총액과 같아서 E230은 “하루 천원”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Sony CPD-E230 : sony.jp에서 전재)

하지만 결국 E230은 저와는 인연이 없었나 봅니다. 소니스타일에서 주문을 한 후 이틀이 지난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이미 집에 모니터는 도착했으나 집안 분위기는 유령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이상하리만큼 싸늘했습니다. 그날 마침 집에 있었던 형은 방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굳은 표정이었고, 어머니도 역시 그런 식으로 계시더군요.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모니터가 도착한 직후, 근처의 다른 아주머니가 찾아왔는데, 들고 온 냄비를 그냥 모니터 박스에 올려놓은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음식이 담겨 있고, 식지도 않은 냄비를 모니터 박스에 올려 놓은 것이지요. 물건을 잘 바꾸지 않고, 세심하게 다루는 형이나 저에게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 중의 하나였지요. 바로 그 사건으로 집안 분위기가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지요.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와 형이 화해를 하기는 했지만, 그 사건 이후로 집안에서는 자기 소유가 아닌 전자제품에 손대는 것은 금기사항이 되었답니다.
포장을 뜯고 모니터 본체와 스탠드를 조립하려는 순간, 눈에 띄인 것은 하부균열!!
전원을 넣고 화면이 잘 나오는지 테스트를 하니까 모두 정상작동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돈 다 주고 처음부터 갈라져 있는 물건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소니스타일에 전화를 하니 택배회사와 교섭해 보라는 말부터 나왔습니다. 하지만 삼성이나 로직스 등 타사 모니터를 대량 취급해 봐서 상기 메이커들의 충격방지재 양이 소니보다 명백히 적은데도 하부가 터져 있는 경우가 없음을 알고 있었던 터라, 책임 떠넘기지 마라고 일축하고는 제대로 된 제품으로 교환해 달라고 요청했지요. 그렇게 반송한 후 새 제품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두번째의 제품도 포장을 뜯고 본체와 스탠드를 조립하려고 아래부분을 봤습니다. 이것도 역시 터져 있더군요. 다시 소니스타일에 연락을 했습니다. 환불이 곤란합네 아니면 못해주겠다는 식으로 나와서 드디어 참고 있던 것이 터져 버렸습니다. 전화에다 대고 소리를 빽 질러 버렸어요. 담당자 누구냐, 뭐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하느냐, 결함품을 보내 주고서 잘못이 없느니 하는건 어디서 배웠냐고 따지니까 환불을 해 줄수도 있다고 나오더군요. 이제는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건가 싶어서 일본어로 따졌더니 담당자가 왜 일본어로 그러냐고 되묻길래, “지금까지 한국말 못 알아 듣는거 같은데요?” 라고 비꼬았죠.
그 다음날부터 환불을 받는 날까지 매시간마다 담당자를 계속 불러내서 따지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월급에서 공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예외없이 100% 환불을 해 주겠다는 약속을 수십회 받아냈습니다(참고로 제 형의 E200의 경우는, 초대 제품은 베젤 부분이 심하게 파손된 물품이 배송되어 반환, 2대째는 콘덴서 문제로 수리를 보냈으나 소니 측의 과실로 대파되어 사용불능, 후에 엉뚱한 제품에 이전 모니터의 시리얼넘버를 떼다 붙이는 식의 조작에 의한 사건은폐가 적발되어 소니 측에서 과실을 인정하고 새것으로 무상제공하여 지금 쓰는 것은 3대째입니다.). 결국 저에게는 트리니트론과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하고 불운으로 시종일관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나도 디카세대!!)
3년에 걸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2003년 하반기를 대입재수에 바친 그 결과는, 2004년 서울 모 대학의 정시전형 최종합격으로 이어졌습니다(학교 이름만 말해도 학력서열화 조장 등등의 비판이 속출할지도 모르므로 학교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글을 읽으시면서 나오는 단서를 토대로 추측하시길 바랍니다. 단, 단서는 일부러 심어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활무대가 갑자기 대구경북지역에서 수도권, 특히 서울 남서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2004년 3월.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는 중세 유럽의 격언이 실감나는 한 때였습니다. 형으로부터 입학선물로 현금 50만원을 받고, 이 돈으로 디지탈카메라를 사서 새로이 시작하는 대학생활과 취미생활에 유용하게 쓰라고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입한 디지탈카메라 SONY Cyber-Shot DSC-P8은 사실상 형이 사 준 입학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지탈카메라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ASCII 등의 일본 컴퓨터 잡지에서 디지탈카메라 특집을 보고 기종을 선정해 놓았기 때문이지요. Cyber-Shot DSC-P8이 메모리스틱을 쓰기 때문에 메모리스틱 슬롯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는 VAIO GR5F/BP 노트북에는 안성맞춤이었고, 본체가격 30만원대 중반의 기종에서 높은 기동성, 뛰어난 동영상 촬영능력, 경제성의 조화가 가장 잘 되는 기종이었기에 별 고민 없이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중시하는 것이 기동성이다 보니, 렌즈교환식 카메라인 DSLR에는 썩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하이엔드급 카메라가 필요하다면 렌즈일체형으로 높은 광학줌을 지원하는 모델이 바로 꺼내서 사용할 수 있으니까 더 유리하겠지요.

(샤프액정은 트리니트론만큼 나온다)
2003년의 트리니트론 소동이 있었지만, 그래도 외부 모니터에 대한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CRT에서 살 것이 없어졌으니 결론은 뭐라고 해도 LCD.
그런데, 저의 색감에 대한 취향 자체가 아주 까다롭다 보니 후보 자체가 많이 나올 수 없더군요. 선호하는 액정 구동방식은 IPS(In-Plane Switching) 아니면 ASV(Advanced Super View)였습니다. MVA 방식은 당시 국내에서 구할 수 없었기에 제외되었고, 삼성의 PVA 방식은 명암비와 반응속도를 제외하면 IPS 방식에 대한 우위가 없었기에 고려대상 자체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가격인데, IPS 액정을 사용하는 모델은 당시 예산규모로 힘들더군요. 물론 직장생활로 저축해 놓은 것이 나름대로 있긴 했지만, 종자돈 개념으로 모아놓은 것이라 함부로 손대기가 곤란했으니까요. 가령 EIZO L685EX 같은 것은 확실히 좋기는 하지만(IDTech의 IPS 액정 사용 : IDTech는 일본IBM과 치메이 옵트로닉스의 합병회사) 가격대가 160만원대를 넘었으니 주머니 열기가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대안은 있었으니, 샤프(Sharp)의 ASV 액정을 사용하는 SHARP LL-T1620B(16인치)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차피 16인치에서 19인치까지는 모두 SXGA로 해상도가 1280×1024였으니, 화면이 클수록 화소가 크고 화면이 거칠어 보이니까요. 그래서 동일해상도에서 가장 작은 16인치 액정이 화면의 정밀도에서 가장 유리했지요. 가격면에서도 역시 동일 화면크기의 EIZO L465에 비해서는 확실한 이점이 있었습니다. 58만원이라는 가격은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는 최저가였는데다, EIZO L465에 사용되는 액정이 샤프의 것이지만 LL-T1620B에 채용되는 ASV 액정이 아님을 알고는 확실히 마음을 굳힐 수 있었지요. 참고로VAIO GR5F/BP 노트북의 액정도 제조사가 샤프입니다.
2004년 8월, 그렇게 해서 드디어 LL-T1620B을 손에 넣는데는 성공했습니다만, 2003년의 E230 사태의 재판이 될 뻔 했군요. 용산에서 신림동까지 들고 오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신림동의 자취방에 도착해서 포장을 열고 얼마 안 있어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뭐랄까요 모든 것을 갖추었으되 다만 동남풍이 없다는!!

(당시 개봉직후의 상태 : 2004년 8월 촬영)

아무리 뒤져 보아도 전원케이블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리학 지식을 아예 무시해서 투명한 전원케이블이 있다 치더라도 전원케이블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것인데다, 제품정보에 무선 전원공급이 가능하다는 말도 없었기에 전원케이블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때는 오후 4시를 훌쩍 넘긴 시점으로. 곧 업무종료시각이 임박했습니다. 샤프에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전원케이블이 없을 수 있는가, 지금 찾아갈 테니 당장 달라고 했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혹시 정품 아닌걸 샀느냐는 동문서답이었습니다. 만일 일본내수품을 샀다면(들어온다는 증거도 없었지만) 일본사양의 100V 케이블이 들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고, 박스 속에 한국 내 보증서가 들어있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냐고 일축하고는 바로 등촌동 본사로 몸을 옮겼습니다.
결국 도착한 것은 5시 30분을 넘겨서였습니다. 1층에서 안내직원이 업무시간 끝났다고, 내일 오라고 하였지만 저는 담당자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위층에서 담당자가 왔습니다. 지금 당장 전원케이블을 달라고 요구를 하는데 처음에는 지금 업무시간 종료후에 다시 오라고 하면서 돌아가라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제값 주고 산 물건에 처음부터 하자가 있는데다 지금 당장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점에 대해서 아무런 반성이 없는 점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전원케이블을 내놓으라고 맞섰어요. 담당자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다른 곳에 전화를 하고 나서 몇 분이 지나서, 다른 직원이 전원케이블을 가져 왔습니다. 혹시 비규격의 제품을 그냥 내오고 나중에 하자 생기면 유지보수를 회피하는 근거로 삼을 거냐고 한번 더 따졌지만, 담당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급여를 희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며, 가져 온 케이블 또한 한국판매용으로 넣는 케이블과 동일품목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원케이블을 받고, 오고 가는데 든 택시비 명목으로 2만원도 추가로 받아낸 후 돌아왔어요.
결국 9시를 훌쩍 넘겨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지요. 하지만 이제 전원케이블을 손에 넣은 이상, LL-T1620B의 발군의 화질을 감상할 일은 초읽기였기 때문에 마냥 지쳐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외형을 살펴본 결과, 예전의 소니 E230 사태에서처럼 외형이 깨져있다든지 하는 문제는 없었음에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노트북의 외부모니터 단자에 연결해서 데스크탑 확장, 화면전환 등등을 테스트하고 Nokia Monitor Test 등을 이용하여 불량화소 문제 등을 검사했습니다. 이 역시 문제될 만한 것이 없어 제대로 샀구나 하는 확신이 들더군요. 아날로그 접속방식이기 때문에 변환에 의한 신호간섭 때문에 색번짐이 있긴 했지만, 트리니트론에서 보여지는 정도의 색번짐 수준과 다르지 않아서, 1m 정도의 거리에서 보았을 때 문제되는 부분은 전혀 없었지요. 그리고 노트북 내장액정과의 비교를 통해본다면, 선명도에서는 뒤지나 색감(노트북 내장액정은 26만 칼라이고 디더링 처리에 의해 1670만 칼라를내지만 데스크탑 모니터용 액정은 실제 1670만 칼라를 구현하기 때문에 수준 자체의 단순비교는 무리가 있습니다만)과 밝기에서는 월등함이 바로 보이더군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18개월을 훌쩍 넘긴 시점에서도 초기의 화질에 뒤지지 않는, 아니, 더욱 향상된 색감과 가독성을 보여 주는 내구성에 놀라고 있습니다. 색감은 EIZO 685EX나 CG18 등에 비하면 열세를 보이지만, 노트북 내장 액정의 뛰어나지만 렌더링 감각이 묻어나는 인공적인 감각보다는 보다 자연적인, 저의 표현대로라면 소나기가 내린 후의 투명한 공기의 감각이 느껴질 만합니다. 이로써, LCD에 대한 편견은 해소되고, 샤프의 ASV 액정이 트리니트론을 뒤이을수 있는 자격이 됨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모니터 대표업계(도시바 FST, 삼성 저반사코팅 브라운관, 소니 트리니트론, 미쓰비시 다이아몬드트론, 샤프 ASV액정)의 제품라인업도 모두 갖추게 되었습니다.

(세팅 직후 모습 1 : 2004년 8월 촬영)

(세팅 직후 모습 2 : 2004년 8월 촬영)

(harman/kardon으로 오디오파일 입문)
샤프 LL-T1620B 도입 직후의 이야기입니다.
영상에서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했으니 그 다음은 음향 분야를 공략할 차례.
하지만 이 문제는 2000년부터 햇수로 다섯 해를 고민하고도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이어서 예산이 충분히 있어도 실행으로 손이 가지를 않는 모종의 교착상태였어요.
일본의 매킨토시 관련잡지인 MacPower에서 본 광고 하나가 그 원인이었다면 약간 어이없는, 그리고 다소 유치한 변명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저에게는 그랬으니까요.
당시 광고는 미국의 유명 하이엔드 오디오메이커인 BOSE의 멀티미디어 스피커 시스템인 MM-1에 대한 것으로, 제품의 사진 위에는 사용자들의 극찬하는 평가가 지면을 꽉 메우고 있더군요. 도대체 얼마나 좋은 스피커이길래 이 스피커 한 세트로 컴포넌트가 필요없다고, 고가의 오디오시스템에 필적한다고 하는지 환상이 생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BOSE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다고 평가할 처지도 아닌데다, 당시 한국내에서는 해당 기기를 시청해 볼 기회조차 없었으니까요.

(BOSE MM-1 : bose.co.jp에서 전재)

그래서 언젠가 일본에 가면 반드시 그 MM-1을 사 오겠다고도 생각했지만, 2년 후 2002년 정작 일본에 갔을 때에는 살 수가 없었어요. 신제품의 발매 소문이 나도는 중에 재고도 없고, 예산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우선순위가 높아서 시급한 것이 스피커가 아니라 OCR이나 지도제작 같은 실무용 소프트웨어였기 때문인 까닭도 있었기 때문에, BOSE MM-1을 꼭 사야 할 이유는 설 자리를 점점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사용하던 테크닉스(Technics)의 HT400이라는 헤드폰의 성능도 제법 좋았으니까요. 역시 비슷한 이유로, 2002년 하반기의 소니의 MDR-V700DJ 헤드폰 구입계획도 접었지만요.
하지만 하먼카든(harman/kardon)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도시바의 일부 노트북 라인업에 하먼카든 스피커 유닛을 장착한 제품도 있었고, 애플센터에서 harman/kardon Soundsticks(USB방식)과 이후 출시된 harman/kardon Soundsticks II(일반 아날로그 단자방식)을 시청할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애플센터에서는 JBL Creature도 비교시청할 수 있었으니까 후회없는 선택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용산전자상가의 도시바 매장을 지나다 보면, 노트북 내장스피커의 음질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풍부하고도 화려하며 해상력도 탁월한 사운드에 놀랄 때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 하먼카든의 위력이었습니다. 게다가 군인시대부터 계속 읽어왔던 자동차 잡지인 모터트렌드(Motor Trend : 한국판은 2005년에 나왔습니다. 2000년부터 읽어 오던 것은 미국판이었고, 카투사로 군복무를 한 터라 부대 내 도서관에서 쉽게 읽을 수 있었지요)에서도, 특정 자동차 모델(레인지로버, BMW 등)을 평가할 때 하먼카든 오디오에 대한 극찬이 따르는 것을 보고 하먼카든은 좋은 메이커구나 하는 등식이 머리 속에 성립한 것이지요.

(harman/kardon Soundsticks II : harman-multimedia.com에서 전재)

그렇게 한참 고민해가던 도중, BOSE에서 신제품인 MediaMate II라는 제품이 나오게 됩니다. 이전의 MM-1의 25,000엔이라는 고가와는 달리 16,000엔이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는 눈이 갔지만 여전히 한국에는 미발매 상태. 그리고 다음에 일본에 갈 기회가 언제 생길지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BOSE MediaMate II : bose.co.jp에서 전재)

안되겠다 싶어서 2004년 8월의 끝자락에 충동구매를 하게 됩니다. 애플스토어에 전화를 해서 harman/kardon Soundsticks II를 주문하고는 바로 물품대금 275,000원을 애플계좌로 밀어넣었습니다. 이튿날 배송되어 온 것은 아무런 하자도 없어서 안심이었지요. 앞에서 이야기한 E230사태나 LL-T1620B 사태와는 전혀 다르게, 처음부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음질은 매장에서 들었던 명징함, 화려함, 그리고 풍부함 그 자체라서 만족을 했습니다만, 테크닉스 HT400 헤드폰과 비교해 보니, 전까지는 아주 훌륭한 사운드라고 생각했던 헤드폰의 그 음질이, 순간 막걸리라도 몇 잔 걸친 것같이 들렸으니까요.
즐기는 음악 장르 전반에 걸친 테스트를 수행해 보았습니다.
대개 클래식음악, 그것도 특히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음악을 즐겨 듣고,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등 비영어권의 대중음악도 좋아하는 터라, 오디오기기가 만족해야 할 사항에 모순되는 조건이 많았습니다. 비올이나 류트, 테오르보, 쳄발로 등 고악기는 음색이 아주 섬세한 반면 근대악기만큼 공명특성이 좋지 않은데다가 현의 장력이 약해서 강하고 박력있는 음색이나 풍부한 음량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팝 음악은 또 다른 성격을 요구하지요. 해상력도 중요하지만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색, 그리고 강한 박진감으로 듣는 사람의 마음속을 파고 들게 하는 것이 생명력이니까요. 이 모순되어 보이는 요구를, harman/kardon Soundsticks II는 뛰어나게 만족시켜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투명아크릴로 되어 있는 디자인(산업디자인 관련서적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과 파란 불빛은 음악을 마치 한정식이나 가이세키료리(会席料理)처럼 만들어주고 있더군요. 사진자료를 남겨놓지 않아 아깝긴 하지만, 2005년 1학기 고급영어 프리젠테이션 때 사용하여 수강반 학생과 교수로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한 일본인 친구(동갑인 20대 후반 여성)는 harman/kardon Soundsticks II의 서브우퍼를 보고 저 커다란 전구는 뭐냐고 묻기도 하더군요. 이렇게까지 말하면 과장일지도 모르겠지만, 원룸과 같이 작은 공간 내에서는 음악대학 멀티미디어실에서 사용하는 JMLab 스피커 + Krell 앰프 + Pioneer LDP 조합도 부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USB 2.0의 추억)
그리고 2004년의 해가 끝나가고, 기말고사 걱정을 해야 할 때가 박두하고 있었습니다.
신림역 주변의 한 고시원에서 학교 근처의 원룸으로 이사한 이래 TV를 볼 기회는 추석 때 본가에 갔다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습니다. TV를 잘 보는 편은 아닙니다만, NHK의 프로젝트X나 대하드라마, BS일본의 노래(엔카 위주의 음악방송) 등은 자주 보는 편이었기에 답답하다는 감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본가에 잠깐 있을 때 국내 케이블채널에서 하던 일본 드라마인 “유리가면”을 재미있게 보다 보니 서울에 돌아가고도 계속 보고 싶더군요. 그래서 외장 TV튜너를 물색한 결과, LeadTek의 제품인 TV USB II와 TV케이블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노트북이 USB 2.0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PCMCIA 방식의 USB 2.0/6핀 IEEE1394 어댑터인 Adaptec DuoConnect AUA-1411을 같이 구입해서 설치를 했습니다. 이미 샤프 액정에다 하먼카든 스피커도 갖추었기에, 100만원 전후로 꾸밀 수 있는 최적의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아닐까, 이 기회에 TV까지 완성해 보자고 자부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전혀 동작하지 않았습니다.
전공과목의 공부에 막대한 악영향을 준다고 교내에 악명이 드높은 대학국어 조별단체과제의 압박이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복원을 새로 하고 재설치를 했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요. 아마 귀신이 제 옆에 있었다면 분명 곡을 했을 것이나, 귀신이 옆에 있지도 않으니 곡소리가 날 리도 없었음은 명백했구요.
한국총판인 앱솔루트코리아 용산매장에 가서 교환을 받았으나 여전히 같은 상황이 발생, 그래서 구로디지털단지 내의 본사에 가서 진단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노트북 본체도 대동하고 갔지요.
결과는, TV튜너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직원이 눈앞에서 시연해 보이는데, 그 말을 의심할 수가 없었지요.
원인은 단 하나, USB 2.0이 초기지원되지 않으면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아무리 Adaptec이라고 해도, PCI나 PCMCIA 인터페이스를 통한 것은 작동 자체가 안된다는 것이 직원의 설명이었습니다.
노트북의 USB 1.1 단자에 연결하면 일단 사용은 가능할 것이라는 직원의 말에 해 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화면이 거짓말처럼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독성은 기대할 수준이 아니었으니, 온게임넷이나 MBC게임에서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보면, 유닛이나 건물의 윤곽 자체가 뭉그러져서 식었다가 다시 끓은 수제비 모양으로 나와 있더군요. 즉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USB 2.0을 기본지원하는 차기 노트북 구입 때까지 사용을 보류한 채, LeadTek TV USB II가 지금은 옷장 속에서 외로이 잠들어 있습니다.

(LeadTek TV USB TV II : 2006년 3월 촬영)

(Adaptec DuoConnect AUA-1411 : 2006년 3월 촬영)

(희로애락은 BOSE와 함께)
2005년. 오디오 판매회사에 대해 정보를 축적하고 있던 도중, 한국내에서 BOSE의 상품 라인업이 예전의 하이엔드 기기뿐만 아니라 보급형 멀티미디어 제품에까지 걸쳐 있다는 것을 알고는, 2005년 9월 6일, 용산의 전시판매장에 전화를 걸어 BOSE Companion 2의 재고확인을 하고 다음날 시청 및 구매를 위해 갔습니다. 이 스피커를 구매하는 이유는, 형의 컴퓨터에 좋은 스피커가 없기 때문에 선물해 주기 위해서였지요.
다음날인 9월 7일 오후 4시쯤. 학교본부앞에서 5516번 버스를 타려는데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쇼팽의 폴로네이즈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문자메시지인듯 했는데, 핸드폰을 열고 메시지 내용을 보는 순간,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과 어지러움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동아리 동기의 죽음.
불과 나흘 전에 갓 스무살이 된 남학생으로, 저와 이름이 같아서 비록 연령의 차는 꽤 있지만, 나름대로 친근하게 여겨지던 동기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죽었다니!!
바로 전화를 걸어, 단체문자를 돌린 동아리 친구에게 외치듯 물었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죽었다니? 왜? 어떻게 된 일이야?”
전화너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습니다. 약간 울먹이는 음성으로,
“오빠, 이따 다시 연락드릴께요. 빈소 어딘지 알려드릴께요…그럼…”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일단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보도 없고 해서 일단은 예정된 일인 스피커 시청과 과외지도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도중에 벌써 5516번 버스는 노량진역에 가까와지고 있었습니다.
문자가 왔습니다. 살아있냐고 묻는 다른 동기의 문자메시지.
전화를 걸어서, “안부 묻는건 고맙지만, 지금 장난해? 나랑 성이 다른거 뻔히 알면서!! 그리고 지금 듣는 목소리 귀신 아니니까 걱정 안해도 된다.” 라고 이야기해주고는, 용산으로 향했습니다. 마음속은 슬픔과 혼란속에 멍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은 일이니까 포커페이스를 하고
매장에는 BOSE의 각종 제품이 전시되어 있고, 시청이 가능한 상태로 세팅이 되어 있었습니다.
보급형 제품으로는 Companion 2(2채널 멀티미디어용)), Companion 3(2.1채널 멀티미디어용), 그리고 Wave Music System(CDP/라디오 튜너/2채널스피커 일체형 시스템) 등이 있었습니다.

(BOSE Companion 2 : bose.co.jp에서 전재)

미리 준비해서 지참한 음악 CD는 카운터테너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의 초기녹음(Decca 448 247-2), 그리고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의 바그너 관현악곡집 제2권(EMI CDM 7 63618 2)의 두 장으로, 음의 정교함과 웅장함 두 측면을 다 보기 위해 전날 챙겨둔 것이었지요.
매장 직원의 양해를 얻어서 Companion 2의 사운드를 듣는 순간, 하먼카든과는 또 다른 감동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Soundsticks II의 저음을 건강미 돋보이는 늘씬한 미녀라고 비유한다면, Companion 2는 섬세함이 눈길을 끄는 훤칠한 미남이라고 할까요. 화려함은 덜하지만 품격높은 저음과 측면, 후면에서 휘감는듯한 공간감은 발군이었습니다. 쳄발로처럼 공명이 적고 현의 튕기는 날카로운 소리에는 불필요한 공명을 만들어내는 감이 없지 않지만, 바그너의 대편성 관현악에서의 박력은 팝 음악에서의 우위를 가늠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지요. 형은 클래식 음악은 거의 듣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아무래도 형의 취향과 맞다고 판단되어 현금으로 결제 후 Companion 2를 사들고 나왔습니다.
그 다음은 신길동으로 가서 저를 믿고 있는 고3 여학생 과외지도를 할 차례였습니다. 아직도 빈소가 어딘지 연락은 오지않은 상태에서 신길동으로 향해 도착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저를 보자마자 손에 들고 있는 스피커와 저의 표정을 읽어내며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거냐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핸드폰 문자메시지는, 의정부 신천병원으로 오면 된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지요.
그래서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지금 이것은 형에게 추석선물로 줄 스피커 세트인데 오늘 사정상 맡겨두어야 할 것 같고, 이유인즉 수업 마치고 나면 바로 빈소로 가야 하기 때문에 거기까지 들고 갈 수는 없다고. 깜짝 놀라면서 누가 죽었냐는 물음에, 그렇긴 한데 지금 고3이고 해서 수업일정을 그냥 바꿀수는 없어 예정대로 왔다고 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그렇다면 다음 수업때 많이 해달라고 하면서 오늘은 일찍 마치는 것으로 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치기로 하고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대방역에서 출발하여 의정부북부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10시를 넘겨서였습니다. 복잡한 골목이라 택시 타기가 여의치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큰길의 위치를 물어 택시를 탔습니다. 신천병원으로 가자고 하니까 택시운전수가 대뜸 하는 말이, 교통사고라도 났느냐고, 오늘 의정부시내에 사고로 후송된 사람은 없는것 같은데 20대 대학생들이 신천병원 가자 해서 이러는게 벌써 세번째라네요.
“동아리 동기가 죽었습니다. 자살이라는데 그것도 못믿겠고…이제 갓 스물 된 녀석인데…”
그리고 신천병원 영안실에 도착. 왜 그가 영정사진속의 주인공이 되어 있어야 하는지, 절을 하면서 결국 눈물이 앞을 가로막아 버리더군요. 동아리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침통한,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그 다음주, 추석연휴에 Companion 2를 갖고 본가에 갔습니다.
그리고 형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하며 가방을 열고 Companion 2 패키지를 꺼내는 순간, 형의 표정이 갑자기 확 펴지며 우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최고의 선물이라고 감탄을 금치 못하며 포장을 뜯고 설치를 하는데, Soundsticks II와 달리 2계통입력이 가능하고 신호케이블이 분리형인 것이 고급감을 더해 왔으며, 전문적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전원어댑터가 직류식(교류입력-직류출력)이 아니고 교류식인 것이 BOSE만의 특징이랄까요. 각종 음악을 테스트해 본 결과, 화려함보다는 솔직담백함을 기조로 하고, 바로크 이전의 고음악 및 피아노 음악에는 밀리는 감이 강하지만 팝, 재즈, 클래식 중에서는 대편성의 관현악곡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특히 팝에서는 최강의 실력을 자랑한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형의 이런 평 한 마디가 BOSE의 특성을 논하기는 부족할 지는 모르겠지만요.
“지금까지 이렇게 품위있고 정확한 저음은 접해 본 적이 없다. B&W에서도 체험해 본적이 없다.”
이렇게 BOSE와의 만남은 성공적이었지만, 전에서 이야기한것처럼 한국에서 만나기까지는 무려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구입 당일에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죽은 일도 겹치는 등, 희로애락이 겹쳐 지나갔습니다. “희로애락은 무학과 함께, 무학소주!” 라는 주류광고처럼, 저의 디지탈라이프에서 BOSE라는 메이커는 희로애락과 같이 하는 존재로 첫만남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Wave Music System, 정말 탐나더군요. 여유가 되면 지르고 싶습니다.

(BOSE Wave Music System : bose.co.jp에서 전재)

5. Win/Mac 양용체제 구축

지금까지의 저의 개인소유 컴퓨터는 모두 5대로, 회고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1대 : 삼성 SPC-3100(1990 ~ 1995)
프로세서 인텔 8088 4.77/9.54MHz(XT)
메모리 640KB, 5.25인치 FDD 2기 탑재, 하드디스크 없음
12인치 흑백모니터(640×200)
운영체제 한글 MS-DOS 3.3
주변기기 없음
소프트웨어 삼성 My-Word, 삼성 My-쉬트, 한글 1.52, dBASE III Plus 등

제2대 : Apple Power Macintosh 7200/120(1996 ~ 현재)

프로세서 PowerPC 601 120MHz
메모리 16MB(이후 48MB로 확장),
VRAM 2MB(이후 4MB로 확장)
자동추출식 FDD 1기 탑재
하드디스크 1GB
8배속 CD-ROM 드라이브
15인치 애플 멀티스캔15 칼라모니터(832×624)
운영체제 한글시스템 7.5.3
주변기기 애플 마우스, 애플 스타일라이터 2500(후에 엡손 Stylus COLOR 500H으로 교체)
소프트웨어 클라리스웍스 등

제3대 : SONY VAIO GR5F/BP(2002 ~ 현재)

프로세서 모바일 펜티엄3-M(투알라틴 코어) 1.13GHz
메모리 256MB(이후 512MB로 확장)
VRAM 16MB(Mobility RADEON에 내장)
하드디스크 40GB
DVD/CD-RW 드라이브(읽기R×24/읽기RW×12/읽기DVD×8/기록×8)
14.1인치 액정탑재(해상도 1400×1050)
운영체제 일본어판 Windows xp
주변기기 외장 하드디스크. 외장 CD-RW, LL-T1620B, Soundsticks II 스피커 등 다수(본문에 언급)
소프트웨어 MS Office 2003 등 다수(일본어판)

제4대 : 오리지널 PC(2003 ~ 현재)

프로세서 셀러론 400MHz(멘도시노)
메인보드 ASUS P3BF
메모리 128MB
그래픽카드 ATi Xpert128(16MB VRAM 탑재)
하드디스크 20GB
32배속 CD-ROM 드라이브
운영체제 일본어판 Windows 98SE
주변기기 소니 E200
소프트웨어 없음
비고 :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또는 중고가게에서 구입한 부품을 모아 만든 세컨드 PC

제5대 : Mac mini M9687J/B(2006 ~ 현재)

프로세서 PowerPC 750 1.5GHz
메모리 1GB
VRAM 64MB(RADEON 9200에 내장)
하드디스크 80GB
DVD/CD-RW 슬롯로딩 드라이브(읽기R×24/읽기RW×12/읽기DVD×8/기록×8)
운영체제 일본어판 Mac OS 10.4.3
주변기기 마이티 마우스, 애플 키보드 외에는 VAIO GR5F/BP와 공유
소프트웨어 EGWord 14, TechTool Pro 4, 乗換案内 MacX 등 다수(일본어판)

이상에서 보듯, 저의 개인용 컴퓨터 사용이력은 이른바 윈텔 진영에만 그치지 않고, 매킨토시에도 걸쳐 있습니다. 인터페이스나 서체 등 디자인적 요소에도 상당히 민감한 편이기 때문에 매킨토시를 꾸준히 사용해 오고 있구요. 초대 매킨토시는 퇴역 후 동태보존 상태로, 업무에는 더 이상 투입하지 않고 있으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개인용 컴퓨터이자 20대 초의 로망을 말해주는 몇 안되는 증거물로 남겨져 있습니다.
이제 다시금 매킨토시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2002년부터 주력기로서 사용해온 VAIO GR5F/BP는 최신게임 등이 아니라면 지금도 부족함없는 성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혹사해 오다 보니 성능외적인 부분에서 기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이 생겼습니다. 이를테면 오른쪽 힌지 부분에서 오른쪽 스피커에 이르는 부분에서 전기잡음이 나는 정도의 문제일까요.
그리고 업무상 용도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도 생겼기 때문이었지요.
윈도우즈 머신으로는 일반적 업무 및 대외적인 호환성을 필요로 하는 일에, 그리고 매킨토시는 엔터테인먼트 및 보안을 요하는 일부 업무 용도에 투입하는 것을 방침으로 하고 매킨토시의 재도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iBook, PowerBook, Power Macintosh G5, iMac, eMac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내장 디스플레이의 메이커 및 화질이 모두 기대이하인데다가 Power Macintosh G5는 지나치게 비싸고 탑재 그래픽카드의 그을린 듯한 색감연출이 싫어서 결국 눈을 돌리게 된 것이 Mac mini였습니다.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보다도 작고 가벼운 본체에, 필요할 기능은 다 있고, 특히 ATi RADEON 9200 그래픽 칩셋을 사용하면서 DVI 출력을 기본으로 지원한다는 사실이 구매를 확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2006년 초, 비밀리에 일본을 갔다 오면서 Mac mini를 구입하게 됩니다. 애플 순정 키보드와 마이티 마우스까지 같이 구입한 것이지요. 그와 동시에 Win/Mac 시스템에 각각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구매하였지요.
그리고 앞서 소개한 모니터인 SHARP LL-T1620B의 DVI 출력화면도 보고 싶었는데다가 곧 인텔 프로세서를 채택한 매킨토시가 출시될 때 더 이상 PowerPC 기반 매킨토시를 접할 수가 없음을 알고 있었던 터라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듯 하여 다시금 일본에서 쇼핑을 하였던 것이지요.
포장부터 해서 본체의 요모조모까지 모든 부분을 보고 귀엽다고 느낄 만한 컴퓨터가 얼마나 있을까요. 귀엽다는 말은 주로 여성들의 옷이나 패션소품 등을 묘사할 때 쓰이는 말이지, 최소한 전자기기나 식품에 흔히 쓸 수 있는 표현은 아니잖아요. 여담입니다만 저는 홍어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에는 단연 홍어의 맛이 들어가지만, 홍어가 귀엽게 생겼다는 점도 끼여있습니다. 홍어의 배 쪽을 보면 입 주변의 생김새가 꼭 웃고 있는 표정같거든요..
사전에 준비해 둔 DVI 케이블로는 본체와 모니터를, 그리고 100V 강압기에다가는 직류전원장치를 연결하고 USB 단자에는 키보드를, 마우스는 키보드의 USB 단자에 이어서 드디어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설정 화면부터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쇄물에서 빛이 나는 듯한 감각의 화면은 거의 넋을 잃게 만드는 정밀함과 아름다움의 연속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모든 기본설정을 마치고 성능테스트를 실시했습니다. 애플센터에서 보던 Cinema Display의 색감이 어딘가 물빠진 듯한, 그래서 허전한 감이 없지 않은 데에 반해, LL-T1620B의 그것은 밝기에서는 약간 밀리지만 확실히 선명하고 시원하여 마치 소나기 내린 직후 투명한 여름 공기를 보는 듯한 감각을 선사해 주었지요. 시종일관 LL-T1620B에는 찬사를 거듭해서 마치 광고하는 것 같지만 제가 받은 인상이 그런걸 어떡하나요.
그리고 시스템 복원 DVD 등을 이용하여 파티션을 새로 나누어 5개(20/16/16/16/나머지, 그 중 20GB인 첫 파티션을 기동드라이브로 설정)로 한 후, 구입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여 테스트를 해 보았습니다. 인터넷 연결을 해서, 애플이 자랑하는 브라우저인 Safari도 보았구요. 서체 때문인지 늘상 보아오던 웹페이지가 전혀 다른, 마치 인쇄물로 만들어진 듯한 착각은 새로운 느낌이었구요. 확실히 사길 잘 했다는 느낌이 드는 한 대였습니다. 단, 슬롯로딩 방식의 광학식드라이브는 디스크를 넣을 때 충격이 커서 디스크 변형의 위험이 있지 않을까 다소 불안한 감이 있긴 합니다.
특이한 점은, 키보드의 문자입력방식에 있었습니다. 일본어판 윈도우즈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할 때 한국어의 키보드 레이아웃을 모르면 특수문자 입력을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숙지가 기본입니다. 일본시양 키보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국사양이나 미국사양과는 특수문자 배열도 판이하고 키도 더 많으니까요. 그런데 매킨토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수문자가 키보드의 초기 레이아웃대로 입력이 되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의 Mac mini의 사양에 이상함을 발견하셨을 지도 모르겠군요. 사실 이상한 것 맞습니다. M9687J/B의 원래 사양은 프로세서의 클럭스피드가 1.42GHz이며 VRAM도 32MB입니다. 메모리가 1GB인 것은, 당시 도쿄 아키하바라의 라옥스(LaOX) 매장에서 살 때 메모리 증설이 완료된 모델을 구입해서지만, 프로세서나 그래픽 칩셋의 변경은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한마디로 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Mac mini 관련 일본의 사용자포럼에서 확인해 본 결과, 수급상황에 따라서 프로세서 1.25GHz 대신에 1.3GHz인 것을, 또한 1.42GHz 대신에 1.5GHz인 것을 사용하여 조립한다고도 하네요. 저와 비슷한 경우를 겪은 사용자가 간혹 보이는 것을 봐서, 설득력이 있는 말 같습니다. 그래픽칩셋에 대해서는 정보를 찾을 수 없었지만, 프로세서의 건과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요?

(Win/Mac 양용체제 완성 : 2006년 2월 촬영)

6. 비즈니스 스테이션으로의 재발전

(소프트웨어 추가도입)
앞에서 Mac mini를 도입할 당시 소프트웨어도 추가도입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지요?
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최적화된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무용지물. 그래서 주 업무에 맞는 소프트웨어 도입은 피해갈 수 없는, 그리고 꼭 필요한 일이지요.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고 일본국내에서만 쓰이는 소프트웨어도 있지만 소개해 봅니다. 여기서 공개 소프트웨어 및 메이커 번들 초기도입 제품은 제외하고, 별도로 구매한 것만을 소개합니다. 모두 일본어판입니다.

2002년 1차 도입 소프트웨어
A.I.Soft 読んde!! ココ 8 일본어/영어 OCR 소프트웨어
A.I.Soft まっぷっぷ 5 지도작성/편집 소프트웨어

2006년 2차 도입 소프트웨어
(Windows)
Microsoft Office 2003 Professional(upgrade) 업무용 종합소프트웨어
Norton SystemWorks Premier 2006 시스템관리 소프트웨어
いきなりPDF Expert Pack2 PDF 작성 및 재변환 소프트웨어
(Macintosh)
Ergo EGWord 14 워드프로세서/전자출판 소프트웨어로 자사개발 일본어입력기 EGBridge 탑재
Micromat TechTool Pro 4 시스템관리 소프트웨어
乗換案内 MacX 시각표검색/운임산정/이동경로설계 소프트웨어

(2차도입 소프트웨어 라인업과 AUA-1411을 같이 촬영 : 2006년 3월 촬영)

Microsoft Office를 업그레이드판으로 산 이유는, 2002년 구입한 노트북 VAIO GR5F/BP에 이미 Office XP Personal이 번들로 있었기 때문에 비용절감이 가능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대외발표를 전제로 발행하는 문서의 경우, 혹시나 서체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인쇄물 이외의 전자문서 형태로 배포할 경우는, 반드시 PDF, 텍스트판, HTML 문서, JPEG 또는 TIFF 이미지 파일 중 상대측에서 별도 요구하는 포맷의 문서를 같이 배포하고 있습니다.

(LED칼라프린터 OKI C3200 도입)
2006년 2월. 가장 최근에 있었던 디지탈기행의 행보는 OKI C3200 칼라프린터의 도입이 되겠습니다.
이 기종은 편의상 칼라레이저프린터라고 지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정확한 분류는 아니지요.
4연장 디지탈 LED를 채용한 건식사진복사방식 풀칼라프린터, 줄여서 Digital LED프린터라고 하며, 이것은 오키가 사용하고 있는 인쇄방식입니다. 구조가 간단하고 정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인데다 장수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또 여담입니다만 제 기억으로는, 1990년대 초반, 그러니까 교육용 컴퓨터 브랜드로 삼성 알라딘, 금성 PC파트너, 대우전자 아이큐슈퍼, 대우통신 프로엘리트 등등이 컴퓨터잡지에서 흔히 보이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대우통신에서 LED방식의 프린터를 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카탈로그상에서만 보았을 따름 실물은 본 적이 없습니다.

오키의 Digital LED프린터에 대해서는, 2000년 즈음부터 일본의 컴퓨터 관련정보를 접해 오다 보니 알고 있기는 했지만 실물을 볼 수는 없었지요. 당시 한국시장에 참여하지를 않았으니까요. 최근 들어서 국내에서도 보이긴 하지만, 렉스마크(Lexmark, IBM의 프린터사업부가 독립된 회사로 출범)도 미군부대 등 제한된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브랜드였습니다. 지금까지 출력소, 정부기관 등 여러 곳에서 사용해 본 하이엔드 칼라프린터는 엡손, 캐논, QMS, 텍트로닉스(Tektronix, 현재의 후지제록스) 등이었고 오키는 본 적이 없었지요. 그래서 항상 의문속에 남아있던 브랜드였습니다. 적어도 2월까지는.
그러나, 갑자기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일본에서 귀국 직후, 다나와를 뒤지다가 우연히 한국오키시스템즈의 C3200 칼라프린터관련 사은행사 뉴스를 보게 되었고, 이때다 싶어서 구입을 하려다 보니 행사기간은 2월 19일까지라고 되어서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엡손의 AcuLaser CX11F(칼라레이저프린터 + ADF 부착 스캐너 유니트 + 복사, 팩스기능 통합)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니 7자리의 고가격에, 거주공간의 협소함이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고, 게다가 스캐너가 있는 상황에서 그 모델을 구입하는 것은 중복투자라고 생각되고, ADF, 즉 자동급지기가 필요할 정도로 대량고속복사를 할 것 같으면 외부 출력소에서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되어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50만원대 가격의 제품 중 하필이면 왜 오키로 했는가 이유가 있었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건, 비슷한 가격대에서 싱글패스방식의 프린터가, 저의 아는 한에서는 없다는 점이었지요. 대체로 엔트리 레벨의 칼라레이저프린터의 경우, 칼라출력속도가 흑백의 그것에 비하면 1/4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흑백 16ppm이라면 칼라 4ppm이라는 식이 되지요. 그것이 단지 속도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문제는 내부에서 종이가 움직이는 패턴에 있기에 그냥 지나칠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CMYK 4색을 인쇄하는데 종이가 네 번 왔다갔다해야 출력이 완성되는 방식은, 인쇄물의 최종품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기계의 피로도 및 종이 걸림의 우려를 증폭시킵니다. 그리고 장척용지의 사용도 곤란하지요. 그래서 신뢰성 높은 싱글패스 방식이 비록 비싸긴 하더라도 눈이 갈 수밖에 없겠지요. 더군다나 군인시대, 직장인 시대를 거치면서 복사기 및 프린터의 유지보수 문제에 대해 톡톡히 대가를 치른지라 다소 비싸더라도 싱글패스 방식의 칼라프린터를 갖고 싶었지요. 하지만 마음에 드는 모델은 고가의 솔리드잉크 프린터 등이었고, 복합기를 선택하자니 현실적인 가격대에서는 싱글패스 방식을 포기해야 하니 아마 조조가 옆에 있었다면 계륵이라는 말 대신 칼라프린터라는 말을 고사성어로 남겼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지요.

결국 2006년 2월 15일, 저에게도 OKI C3200으로 시작하는 칼라프린터 시대가 개막했습니다.
전날인 2월 14일 주문하고, 운송장번호를 토대로 택배회사에 배송조회를 의뢰한 결과, 이미 오후3시 경에 관악영업소에 물품이 도착해서 배송하러 나갔다고 해서 곧 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기다렸습니다. 오후 7시까지 모든 세팅을 마쳐 놓으면 동아리 모임에 갈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배송상황은 그날의 계획에, “흠, 그렇게는 안 될걸?” 이라고 비웃기라도 하는 듯,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엄청난 크기와 31kg이라는 상당한 무게는, 그나마 제가 체격 큰 남자니까 혼자 운반할 만하지, 보통체격의 독신여성이 운영하기에는 뭐랄까 난점이 꽤 있어 보입니다. 겨우 방 안으로 옮겨놓고는, 포장을 뜯었습니다. 스티로폼 충진재는 여덟 모서리에만 있고,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박스는 접어서 옷장과 벽의 틈새에 끼워 넣으면 다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사용해오던 hp LaserJet 1000보다 더 크면서 실제 사용시 공간을 더욱 컴팩트하게 쓸 수 있게 한 점이 놀라웠습니다.
제품의 첫 인상은, 메이커에는 미안하지만 이 한 마디였습니다.
무식하게 생겼다!!

(OKI C3200 : 2006년 2월 촬영)

노트북의 옆면이 얼마나 예쁘고 날렵한가를 설계철학의 기준으로 보고, Soundsticks II 스피커나 Mac mini 본체가 예쁘다고 극찬하는 사람이, 정작 거금을 들여 프린터를 사는 데에는 디자인을 무시하고 성능과 내구성 등 기술적인 측면만 보다니 의외일 수도 있겠지요. 이것도 부족해서 메인보드의 배선과 기판의 색 때문에 ASUS 메인보드를 좋아한다든지, 기판의 저항 및 콘덴서의 배치까지도 미적 기준을 따지는 등, 타협이란 개념 자체를 모르는 지독한 녀석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니까, 뭣에 씌인 게 아닌 이상 기대가능성이 없겠지요. 하지만 그런 미적인 불리함을 상쇄할만한, 오키가 자랑하는 인쇄물의 품질을 체험하고 싶었기에 눈 찔끔 감고 질러 버린 것이지요.
OKI C3200은 말 그대로 엔트리레벨의 제품으로, 네트워크 프린팅이나 자동양면인쇄, 메모리, 트레이 등의 증설을 옵션으로도 할 수 없는 개인사용자 대상제품이지만, 현재로서는 이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설치를 하려고 매뉴얼과 드라이버/유틸리티 디스크를 꺼냈지만, 사실 매뉴얼은 꽤 부실한 편이더군요. 직접 OKI 칼라프린터를 이용해서 제작한 것 같지만, 부실한 것은 인쇄 품질이 아니라 정보량이었지요. 설치매뉴얼에 불과하고 나머지 내용은 드라이버/유틸리티 디스크 내에 PDF로 저장되어 있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있나요. 요즘의 트렌드라고 생각하고, 참으면서 설치매뉴얼 순서대로 포장, 테이프 등을 제거 후 토너, 정착기 유닛 등을 모두 알맞게 장착한 후, 전원과 USB 케이블을 연결하고 드라이버 설치를 시작했습니다. 정착기 장착에서 다소 애를 먹긴 했지만요.
일본어판 윈도우즈이기 때문에 영어판으로 세팅을 하고, 프린터 관리 유틸리티도 설치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유틸리티는 일본어판이더군요. 저야 일본어 OS 사용자니까 오히려 잘 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첫 인쇄는, 원래 에러가 좀 날 것을 전제하고 있어서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출력물부터는 오키가 자랑하는 발군의 인쇄실력이 드러나더군요. 일반 흑백문서, 일반 칼라문서, 인물사진, 금속광택사진, 안내지도, 카탈로그, 다른 인쇄물 위의 중첩인쇄 등 약 10여장에 이르는 테스트 이미지를 출력하면서, 색온도 설정 등 드라이버의 세부 사항의 조정을 마쳤습니다. 보통용지가 프린터를 거쳐 나오니 고급광택지로 변신하는 것은 흡사 마술같더군요. 물론 하이엔드 칼라프린터 치고 그렇지 않은 기종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오키의 것은 남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츨력소의 캐논 칼라레이저프린터로 인쇄한 문서와 정밀도, 색감을 비교하였습니다. 오키의 완승입니다. 컴퓨터에 지식이 많지 않은 과외학생들이나 동아리, 학교 친구들에게 두 문서를 보여주고 어느 편이 낫냐고 물어 보니 모두 오키 쪽에 손을 들더군요.
모든 공정을 끝내고 나서 실내를 청소 후 기념촬영을 한 때는 이미 날짜를 넘겨 2월 16일의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물론 동아리 모임에는 끝끝내 갈 수 없었지요. 하지만 OKI 3200 칼라프린터의 설치와 테스트에 보낸 7시간은 결코 후회되지 않는, 최상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전까지는 컴퓨터 등으로 만든 컨텐츠가 경제적 이득을 가져 온 경우가 전부였고 시스템 자체의 운용으로 이득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OKI 3200 칼라프린터의 구입으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출력소보다 저렴하게 인쇄를 해 주고 대가를 받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출력샘플 1 : 카탈로그)

(출력샘플 2 : 일반 비즈니스 문서의 접사)

(출력샘플 3 : 일반문서, 사진데이터 인쇄결과)

(출력샘플 4 : 흑백문서 접사)

(출력샘플 5 : 캐논 대형 칼라프린터(왼쪽) 출력물과의 비교)

(참고 : 출력샘플 5번의 대조군으로 해당 문서의 캡처화면)

7. 향후 계획 그리고 맺음말

지금까지 저의 21세기 들어서의 디지탈라이프를, “비실력파의 제멋대로 디지탈기행” 제하에 주요 사건 위주로 풀어 정리해 보았습니다. 너무 길어서 혹시 열람 도중에 자리를 비우셨다면 제가 죄송한 건데…재미있게 읽으셨는지요?
디지탈 기기가 생활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디지탈 기기의 짧은 라이프사이클과 유행에의 민감한 특성상, 자칫하면 대세에 휩쓸려서 뭐가 좋은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시간과 비용을 낭비해 버릴 위험도 더욱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관심있는 특정분야에 대해 확실한 철학을 수립하면서 접하는 정보의 깊이와 넓이를 가공해 나간다면, 보다 재미있고 박진감 있는 디지탈라이프가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근미래, 즉 올해 안의 계획을 사족으로 달자면, IBM이 설계한 마지막 ThinkPad인 T43p의 구입계획, 현행 주력기인 VAIO GR5F/BP의 하드디스크 교체, DVD 멀티드라이브 장착, 윈도우즈/리눅스 듀얼부트체제로의 개조, GPS 구입에 의한 지리정보 획득 및 가공, BOSE Wave Music System 구입운용 계획 등이 남아 있습니다.
자신만의 디지탈라이프 구현에 저의 디지탈기행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맺습니다.
노트기어 가족 여러분,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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