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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의 기업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렌샹(聯想, Lenovo)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렌샹은 지난 3월 중국의 기업으로는 최초로 IOC가 주관하는 올림픽 파트너 프로그램에 거액의 참가비를 기탁하며, 2008년까지 IOC의 컴퓨터 기술장비 파트너가 되었으며, 아울러 12월 8일에는 미국 IBM의 PC 사업을 매입하는 것에 성공했다. - 노트기어 관련 기사 보기
세계 PC 시장에서 IBM의 PC 점유율이 크게 낮아졌고, 수익성도 악화되었기 때문에 꾸준히 예상되어 왔던 사건이었지만, IBM을 일으키고 성장시켜온 상징적인 사업부의 매각이었기 때문에 관련 업계와 소비자들이 느끼는 충격은 컸다.
국내 역시 이번 매각설을 최초로 보도한 뉴욕 타임즈의 기사가 공개된 이후, IBM 커뮤니티와 IT 뉴스 사이트의 포럼란 등에서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 토론의 대부분은 렌샹의 IBM 브랜드 매입으로 인해 "Think" 브랜드 가치 및 제품의 품질이 저평가될 우려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집중되었다.
노트기어에서는 이번 매각의 의미를 렌샹(聯想, Lenovo)이라는 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국내 노트북 사용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PC 부문(ThinkPad, Centre)에 초점을 맞춰 찾아보고자 한다. 그동안 "중국의 IBM"이라고 불리며,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PC 판매 선두를 지켜온 렌샹이 왜 IBM의 PC 부문을 매입하게 되었는가에 대답하기 전, IBM이 세계 PC 시장에서 걸어온 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의 퇴장을 기리는 동시에, 그 상속자가 받고자 하는 위대한 유산의 실체를 보다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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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의 낡은 것과 새로운 것
IBM은 업무용 패키지를 포함한 저렴한 가격의 PC(IBM 5150)를 출시하면서, 경쟁관계였던 애플이 독주해온 시장을 외형적으로 크게 팽창시켰고, 폐쇄적인 노선을 견지했던 애플의 "Mac"과 달리 지금은 거의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IBM Compatible(IBM 호환기종)"의 길을 열어놓음으로써 소비자들이 보다 저렴하고 다양한 PC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물론, 하드웨어의 개방성 및 범용성은 IBM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고, 83년 컴팩이 IBM 호환 PC를 제작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IBM 변호인단은 아무런 조치를 강구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애플의 매킨토시가 특정영역에 종사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전유물이 된 반면, IBM의 서자(庶子)들은 PC의 보통명사로 등극할 수 있었다.)
그러나, PC 역사상의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10년 만에 컴퓨터 업계의 공룡이라고 불리던 IBM은 회사 해체의 위기를 맞는다. 1994년 시장의 선두는 컴팩에게 빼앗겼고, 사업은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며, 현금 유동성은 바닥이 나있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많은 경영학 서적들이 찬사를 보내는 CEO 중에 하나인 루 거스너(LouGerstner)가 취임한다.
그가 화석화된 공룡 IBM을 쥬라기 공원의 싱싱한 공룡으로 복원시킨 경영 기법은 잘 알려진 것처럼, 관료화된 기업조직과 문화를 개혁하고, 무엇보다 단순한 하드웨어 판매에 의존했던 수익구조를 IT 서비스, 솔루션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리고 거스너가 밑그림을 그려낸 이후 2002년 취임한 "푸른피가 흐르는" 현재의 샘 팔미사노(Sam J. Palmisano) CEO는 "On-Demand" 전략을 통해 밑그림을 완성시켜 가고 있다.
IBM이 렌샹에 남긴 낡은 유산은, 현재는 그 존재 가치가 퇴색된, 계륵(鷄肋)과도 같은 PC 부문이었고, 렌샹이 그토록 바래왔던 새로운 유산인 IT 서비스 부문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마치 거부로 알고 있던 부친의 사업을 상속받고 난 이후, 그 재산이라는 것의 대부분이 처분도 어렵고 재산가치도 적은 부채직전의 상황이라는 알았음을 깨달은 상속인의 허탈감과 비교하고 있다. 하지만, 렌샹이 값비싼 상속세를 물고, IBM의 PC 사업을 인수하게된 배경은 WTO 가입과 아울러, 200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폭발적인 수요가 예상되는 자국 내 PC 시장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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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2004년 레노보의 수익구조 - 출처 : http://www.lenovogrp.com
IT 서비스 부분의 수익성 악화로 인한 전통적인 제조업으로의 복귀
IBM이 IT 서비스 사업을 통해 기업 해체의 위기를 극복한 것을 모델로 삼아, 렌샹은 지난 몇 년간 IT 서비스/컨설팅 부분의 확장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3년 안에 서비스 분야에서 회사 이익의 20~30 %를 기록하겠다"는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작년 회계 연도에서도 수익을 내지 못했으며, 올해 7월 전격적으로 IT 서비스 부문을 야신에 매각할 것을 결정하고,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 때문에 렌샹의 역할 모델이 삼성으로 바뀐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지난 16일 북경대학의 브랜드 연구실이 내놓은 ’중국 100대 최대 가치 소비재 브랜드’ 조사에서 삼성은 447억위안(약 54억달러)으로 1위를 차지했고, 렌샹은 간신히 10위에 턱걸이 했다. 삼성의 성공 신화에 자극을 받아 렌샹은 핸드헬드 시장을 비롯한 핸드폰, 디지털 카메라 등의 생산에 뛰어들고 있지만, 그 성공을 보장하기엔 어렵다는 사실은 렌샹도 잘 알고 있다. 삼성이 자체 기술을 바탕으로 탄생시킨 월드 클래스급의 제품과, 브랜드 인지도를 판매와 연결시키고 있는데 반해, 렌샹은 단순히 "저렴한 가격에 비해 경쟁력 있는 품질", "중국인들의 취향을 정확히 꿰뚫은" 제품을 통해 시장을 장악해왔다. 삼성에 있고 렌샹에 없는 것,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렌샹은 자신들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지니고 있는 분야인 PC 사업에 다시 역량을 집중하고,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IBM의 PC 사업을 탐내온 것이다.
렌샹이 체감하는 중국 PC 시장의 불안요소
중국의 PC 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매력적인 유일한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제조사들을 유혹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최근의 WTO 가입으로 인한 경제 외적 조건의 변화와 북경 올림픽 개최로 인한 특수를 기대하고 있는 기업들의 입장에선 PC 보급률이 10%(전체 인구대비 50~60%를 넘어서면 포화상태로 간주한다)를 크게 밑도는 중국 시장(앞으로 2008년까지 현재의 2배정도로 성장해, 세계 시장의 37%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은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1997년부터 렌샹은 평균 30%를 넘나드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며, 중국 PC 시장에서 1위를 고수해오고 있으며, 세계 시장에서도 데스크탑 PC 6위, 노트북 PC 15위로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PC 시장은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으며, 세계에서 유일한 고속 성장 지대인 중국의 시장에서 급격한 자본주의적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의 소비자들은 저렴한 제품 보다는 자신들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브랜드로 치장하고 싶어한다. PC 역시 제품 자체의 편차가 크게 나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경쟁사인 글로벌 기업 HP나 Dell의 제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실제 델은 작년 자사 특유의 다이렉트 마켓팅만으로 전년 대비 두배 이상 증가한 7% 대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인 렌샹을 긴장시켰다. 자체 브랜드로 해외 브랜드에 대항해온 렌샹의 노트북 점유율도 위협받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제조사들은 세련된 신제품들을 노트북 시장에 투입하고 있고, 과거 IBM 역시 가격적인 메리트를 앞세운 초저가 라인을 전개했다. 2003년 "중국시장과 언론매체연구(CMMS)"에서 공개한 자료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노트북 브랜드로 선정된 렌샹이지만 안도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삼성에 있고, 렌샹에 없는 것은 앞선 기술력이다. PC 제조업체이기 보다는 유통업체에 가까운 Dell의 능수능란한 유통 마켓팅을 모방하기보다는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것이 렌샹에 유리하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판단이다. 렌샹의 기술개발 규모가 업계에서 두드러질 정도로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양위안칭 렌샹 CEO는 앞으로의 기술개발 투자를 현재의 배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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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레노보의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화이트 칼라 노트북 텐이 S180
이와 같은 연장 선상에서 렌샹은 ODM에 주력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노트북 PC 전문연구 개발센터를 설립해 여성 취향의 화이트 칼라 노트북 텐이S180 을 발매해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진입 장벽이 낮은 데스크탑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데스크탑의 대체 수요가 노트북으로 충족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체 기술을 활용한 텐이 S180 의 성공적인 개발은 주목할만하다.
렌샹의 구원투수를 "Think" 한다
IBM은 이번 렌샹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렌샹의 지원을 내심 기대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도 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 자사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과거 진출하지 못했던 세계시장으로 확대해 나가려는 렌샹에게 필요한 것은 실점의 위기를 막아줄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구원투수의 존재다. 구원투수의 가치는 그의 이름이 주는 압도감(브랜드 )과 실제 타자를 압도하는 위력을 지닌 공에 있다. 뉴욕 양키즈의 마무리 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가, 9회말 등판하면 그의 현재 컨디션과 상관없이 상대방 덕아웃이 짐을 쌀 준비를 하듯, 이름이 주는 위압감은 리그 정상급이며, 실제 그는 90마일대 초반의 커터와 95마일을 넘나드는 직구로 타자를 돌려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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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이 렌샹에 남긴 유산은 야마토 연구소로 대표되는 ThinkPad 개발진과, 고색창연한 IBM의 로고가 살아있는 "Think" 브랜드이다. 이 두가지가 이번 합병의 가장 큰 유산인 동시에, 렌샹의 인수 이유이다. 우선 구원투수의 구질을 점검해보면, 중국 내에서 공격적인 기술개발을 주도해온 렌샹은 이번 합병으로 인해 ThinkPad의 산실인 일본의 야마토 연구소의 연구진(개발 및 엔지니어링 인력)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실제로 PS/2 Note를 개발하며 그동안 IBM의 ThinkPad 개발을 진두지휘해온 나이토씨가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며, 개발인력의 대부분도 흡수될 예정이다.
ThinkPad에 있어 그가 지닌 상징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야마토 연구소의 개발력이 중국 본토 내에 있는 "노트북 PC 전문연구 개발센터"와 실리콘 밸리에 있는 자체 연구센터와 유기적으로 결합된다면, PC 뿐만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의 핵심 기술을 축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일본의 미디어와 나이토씨가 가진 회견 내용에 따르면, 기업용에 치중했던 개발 컨셉을 변경하여, 점차적으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AV 기능을 강화한 제품의 비중을 늘려가겠다고 한다. 내년 Sonoma 플랫폼으로 이행하면서 전면적인 플랫폼의 변경을 암시해온 ThinkPad가 이번 매각 결정을 통해 스케쥴의 흔들림 없이, 렌샹과 긴밀한 협력 하에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제품을 시장에 공개한다면 구원투수를 영입한 단장의 입장에선 가장 만족스러운 시나리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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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의 전동료이며 특급 셋업맨으로 유명했지만 시카고 컵스에서 방화범으로 몰려 팀을 떠났던 안토니오 알폰세카는 기대와 달리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기는 커녕 위기로 몰아갔기 때문에, 그의 이름값은 하루아침에 폭락하고 말았다. IBM의 PC 부문을 인수함으로써 규모면에서는 세계 3위의 PC 업체로 등극할 수 있겠지만, IBM의 유산 가운데 비물질적 재산을 렌샹이 고스란히 상속받을지는 불투명하다.
"Think" 브랜드를 고스란히 렌샹이 보유하고, 그 사용권을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한다고 해도, 주요 고객인 기업들은 서버 관련 패키지 형태로 노트북을 공급 받아왔던 관행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비록 렌샹-IBM의 PC가 IBM으로부터 5년간 보증받는다고 해도 그 불신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렌샹 스스로도 IBM 브랜드 자체가 미래의 렌샹과 함께 한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5년간 IBM의 로고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8개월간의 예정된 제품 로드맵이 완료된 이후에는 IBM 로고와 아울러 Lenovo를 공동으로 사용할 계획임을 확언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사용자들이 불안감도 이해할 수 있다.
과거 IBM에서 히타치로 넘어간 HDD 부문이나 고급형 프린터로 유명했던 렉스마크가 현재는 IBM의 "푸른피"를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달라져 버린 사실은, 더 이상 자신들을 구분지어 주었던 "ThinkPad"만의 차별성이 유지될 수 없을 것이란 우려를 증폭시킨다. 또한 IBM이 적자 누적으로 인해 포기한 사업을 렌샹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지 여전히 의문이다. R&D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컨셉의 PC를 선보인다는 야심찬 전략은 이미 소니가 실패한 바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한 자조적인 위안에 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 간 합병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인 조건 보다는 의외로 상이한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이질감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중국 기업 중 가장 많이 침투되어 있다는 렌샹이지만, 글로벌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미국의 거대 기업 조직과,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조직 간의 유기적인 통합은 생각보다 어렵고 시간적으로도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렌샹의 구원투수가 내실이 있는 선수인지 아니면 "유명무실"한 먹튀였는지는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인수 발표 직후 시장의 분위기는 두가지 모두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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