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여러분들과 노트북 이야기를 두서없이 해보려고 합니다.
노트북 이야기라봐야 제가 처음 노트북을 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구입하여 사용했었던 기종들이 중심이 되는 극히 개인적인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노트기어가 노트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웹진이니만큼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 대부분은 노트북을 사용하시고 계시거나 사용할 예정이신 분들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이야 노트북 PC가 그리 특별할 것도 없지만, 국내 노트북 PC -이하 노트북 - 가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에만 해도 노트북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도구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음 노트북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겨울이였습니다. 대만의 볼텍이라는 곳에서 만든 서브노트북이였는데, 당시에는 크기도 작고 성능도 비교적 빵빵(?)한 모델이였습니다. 가격은 240여 만원 정도였던 것 같고 구입은 세운상가 3층 컴퓨터 전문 상가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관련 제품은 용산전자상가 외에도 세운상가쪽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세운상가쪽 상권이 거의 죽어버렸지만 말입니다.
대략 사양은 - 오래 되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 - 386SX 램 4MB(?), 하드디스크 100MB(?), 8.4인치 모노 디스플레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외에 외장 FDD를 옵션으로 20만원 정도에 구입했고 CD-ROM은 패러렐 방식의 외장케이스를 이용하는 데스크탑용 1배속 제품을 40여 만원 정도에 구입했던 것 같습니다.
|
|
|
당시에는 휴대폰도 무척이나 비쌌었습니다. 제가 93년 초부터 사용하던 휴대폰은 모토로라의 울트라 라이트 2800이라는 모델이었는데, 당시 가입비와 보증금, 기기 가격을 합쳐서 약 170여만원 정도 했었습니다. 크기는 요즘 나오는 최신형 모델의 서네 배 정도는 넉근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로서는 획기적일 정도로 휴대성이 강화된 컴팩트형 모델이라 해서 '울트라 라이트'라는 명칭이 붙은 제품이였지요. 대용량, 중용량, 소용량으로 구분된 3 개의 배터리가 기본 제공되었는데, 얇은 소용량 배터리를 장착하면 몇 시간 못썼지만 당시 출시된 휴대폰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가벼웠었습니다.
여튼 20여만원 정도의 큼지막한 알루미늄 가방에 노트북, 외장형 씨디롬, 휴대폰 등을 넣고 이곳저곳 참 열심히 다녔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살인적인 무게를 어찌 감당했었는지... 그래도 약 500여만원 상당의 장비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는 뿌듯함과 잃어버리면 끝장이라는 긴장감이 적절히 섞여서인지 무거운 줄 모르고 늘 가는 곳마다 들고 다녔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노트북 PC는 정말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지금은 웬만한 대학생 정도면 가방 안에 하나씩 갖추고 있을 만큼 흔해져 버렸지만 당시에는 컴퓨터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노트북을 사용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차량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지금처럼 십부제 비슷한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귀한 노트북을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충동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노트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봤자 워드와 타자연습 그리고 간단한 데이터베이스 작업이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1시간도 채 못가는 배터리 성능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노트북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 거의 없음에도 지하철을 타면 어김없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들었답니다. 뭔가 열심히 작업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노트북을 들고 있는 제게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목적이었답니다.
요즘엔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던 최신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신경도 안 쓰겠지만 노트북이 흔하지 않았던 당시 일반인의 눈에 비춰진 노트북은 '판도라의 상자'만큼이나 신기한 물건이었습니다. 노트북 PC를 힐끗힐끗 처다 보면서 놀라운 마음을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고 표정 관리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꽤나 흡족해했던 못난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
|
|
경제사정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던 시절이었던지라 '적어도 3-4년은 써야지...'라는 다짐을 하며 구입했건만.. 6개월이 채 못가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성능 면에서 획기적으로 향상된 인텔 486 CPU를 탑재한 노트북이 새로이 출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성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라고 믿게된건 기술적인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광고 탓이었으며 노트북 사용자들이 한 번쯤 통과의례로 앓게 되는 '기변 병' 혹은 '업그레이드 병'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PC 통신에 접속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던 시절이었는지라 사용하던 노트북을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업체의 보상판매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이 보상판매지 거의 구입 가격에 절반도 보장받지 못하고 헐값에 넘겼고 당시에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볼텍 서브노트북을 헐값에 넘기고 허리가 휠만큼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여 맞이한 노트북은 그 이름도 찬란한 'KIT'노트북이었습니다. 'KIT'면 랜카드 만드는 회사 아니냐?.. 고 생각하시겠지만 천만에 말씀입니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KIT' 노트북의 인기는 거짓말 좀 보태서 지금의 소니 못지않았습니다. 역시 대만산이었지요. 그 당시만 해도 486 노트북은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486SX 33에 램 4메가 하드 240메가, 9.4인치 대화면! - 물론 흑백입니다. 네모반듯한 디자인에 각종 인디케이터를 지시하는 서브 LCD까지 갖춘 멋진 모델이었습니다.
|
|
|
팔이 떨어지든 말든 무려 4킬로그램 가까이 나가는 이 노트북을 저는 어디든 가지고 다녔습니다. 전혀 노트북을 쓸 일이 없는 경우에도 그 큰노트북을 수첩 들고 다니듯 말입니다. 최신 기종이고 FDD까지 내장한 올인원 - 당시에는 광학드라이브를 내장하고 있었던 모델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FDD만 내장하고 있어도 올인원이라고 불렀습니다. - 노트북인지라 가격은 320여 만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역시 이 노트북도 세운상가 3층에서 구입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당시 세운상가에는 일명 '테이프 장사'(포르노 관련물)가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세운상가 2층부터는 청소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세운상가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2,3층을 이용해본 분들이라면 잘 아실겁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사람들을 붙잡아 세우면서 '잡지나 비디오 있는데 싸게 드릴께요~'라는 말을 건네던 호객꾼들 말입니다. 이들은 외국에서 밀수입된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허슬러, 일본 성인물 등의 외설 잡지를 비롯하여 외국의 포르노 비디오를 복제한 비디오 테이프 등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던 집단이었습니다. 물론 각각의 외설물들은 사람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심지어 세운상가 사무동 후미진 곳에 대형 TV와 비디오 플레이어를 갖춘 다음 외부에서 호객행위로 끌어 모은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포르노 영화를 상영하는 불법 영업도 성행했었습니다. '선데이서울'과 같은 주간지에 간간히 실리는 소프트한 세미 누드와 각종 성인용 잡지들에서 다루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저질 기사들이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었던 성인물의 전부였던 시기였는지라, 80년대 초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한 세운상가의 포르노 사업은 빠르게 거대 조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물론 '인터넷'이라는 철퇴를 맞으면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 포르노 사업은 급격하게 쇠퇴하였으며 각종 PtpP 프로그램을 통해 살포되는 수만 종의 동영상물들로 인해 더 이상 세운상가를 통해 외설물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
|
사진설명 : 센스 5000 시리즈의 마지막 업그레이드 모델인 센스 5900
KIT 노트북으로는 그럭저럭 1년 정도를 버텼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다가 '내 몸처럼 아끼는 귀한 노트북'에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국내 최초 칼라 액정 노트북이었던 삼성의 노트북 5800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노트북에서의 칼라 액정-물론 지금의 TFT 방식이 아닌 DSTN 이라는 방식을 쓴 노트북이었지만.. - 이 갖는 의미를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며칠전 9.4mm 의 두께로 발표되어 노트북 사용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소니 바이오 X505' 출시 소식은 델 것도 아닐 만큼의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94년 말 첫선을 보인 센스 5800은 이후 5850과 5900 시리즈로 이어지면서 초창기 노트북 사용자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던 모델이었습니다. 국내 모델로는 최초의 칼라 모델이었던 것만큼 가격도 무척이나 비쌌습니다. 하지만 이미 '업그레이드병'을 알고 있었던 저는 센스 5800의 유혹을 뿌리칠만한 '내성'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지요. 역시 볼텍 노트북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 센스 5800을 구입하였습니다.
|
|
5800 시리즈의 초기 모델은 486DX 50, 8MB 메모리, 270MB 하드디스크 정도의 사양을 갖춘 모델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특히 이 모델은 램업그레이드를 하기 위해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5800 시리즈는 키보드를 뜯어내야 램업그레이드가 가능했는데, 처음에는 판매자나 구입하는 저나 이 사실을 몰라 삼성 AS 센터에까지 전화를 했었습니다.
결국 업그레이드 방법을 알아내고 판매업자가 키보드 분리 잡업을 실행했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찌나 조마조마 하던지... 실제로 이 모델은 키보드 제거 작업시 키보드 케이블에 흠집이 생기는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 [keyboard struck key failure]라는 메세지와 함께 이상한 데이터가 출력되며 키보드 입력 정보가 제멋대로 전송되는 현상이 발생하여 사용자들을 당혹스럽게 하였습니다. 램업그레드 과정에서 키보드에 문제가 생겨 AS를 찾는 사람들이 상당 수 있었지요.
결국 4MB를 늘려 8MB를 만들고 2배속 외장형 광학 드라이브를 추가하는 조건으로 400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지만 최신형 칼라 노트북을 얻었다는 기쁨에 밤잠을 설치정도로 들떳었습니다. 갖출시 된 최신 모델을 들고 와서도 2-3일씩 박스채로 방치해두는 일이 예사인 지금과 비교해보면 정말 순수했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때부터 저는 본격적인 '교환병'을 앓게 되었으며 항상 제 곁에는 두 대 이상의 노트북이 함께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센스 5800 다음으로 구입한 노트북은 아이넥스라는 백마(?)였습니다. 순수 국내 제조업체였던 아이넥스사는 노트북에 회사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생산된 노트북 모두 백색 계열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안가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사용자들이 많은 곤욕을 치룬 노트북이기도 합니다.
|
|
|
이
기사는 2개의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전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