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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넥스 노트북 다음으로 구입했던 모델은 "슬기틀"이라는 노트북이었습니다. '노트북 혹은 랩탑이라는 외래어를 버리고 순수 우리말을 사용하자~'라는 의도로 제품명을 순수 국어 이름인 '슬기틀'이라고 한 것이지요. 당시에는 단순히 '조금 우습다' 정도로 가볍게 넘겼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의식 있고 용기 있는 시도였다고 느껴집니다.
슬기틀은 486DX2 66Mhz CPU에 4MB 메모리, 260MB 용량의 하드디스크, 모노 STN 액정으로 출시되었으며 DX4-100MHz, TFT 칼라 액정 모델을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는 했지만 업그레이드가 용의했다는 장점이 있었던 반면 FDD와 외장 케이스의 파손 문제로 AS를 받아야할 일이 잦기도 했습니다. 케이스의 경우 무상으로 교체를 해주었지만 AS를 받으려면 본사로 노트북을 꼭 들고가야 했던 불편이 따랐습니다. 슬기틀 다음으로 사용했던 모델은 효성에서 내놓은 노트북이었는데 사용기간이 짧은 탓에 정확히 어떤 사양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효성 노트북 다음에 푹 빠졌던 기종은 다름 아닌 대우의 명품이었던 솔로 7400이었습니다. 486 노트북이었지만 8.4인치의 TFT액정과 지금의 서브노트북에 뒤지지 않는 작은 크기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 이 모델의 가장큰 장점중 하나는 하디드스크가 가득 찰 때까지 음성 녹음이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내장 마이크로폰 하나면 간단히 구현되는 기능이지만, 당시만 해도 카세트 레코더가 있어야 음성 녹음이 가능한 것으로 알았던 터라 노트북으로 강의나 대화를 장시간 녹음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일종의 핫이슈에 해당하였습니다. 물론 녹음 품질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만.. 9.5인치 DSTN 모델과 8.4인치 TFT 모델 그리고 10.4인치 액정을 탑재한 7420까지 총 세 대를 10여 개월간 사용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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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노트북에 주로 사용되던 입력 디바이스는 ‘트랙볼’이라는 장치였습니다. 트랙볼 마우스의 원리는 여타 볼 마우스를 뒤집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볼이 회전하면서 이동에 대한 정보를 전송하는 방식이지요.
트랙볼의 성능은 볼의 움직임을 스캔하는 센서의 기술과 볼이 회전할 때 사용자가 느끼는 감도에 따라서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입력 부위가 돌출되어야 하고 차지하는 공간의 범위가 넓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펜티엄 이후의 모델부터는 평면적인 구조로 공간 활용에 효율적인 터치패드가 주력 디바이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공간적인 약점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트랙볼은 섬세한 움직임과 같은 독특한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트랙볼 마우스 등과 같은 장치에서 꾸준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파나소닉처럼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제조사에 의해 광학 트랙볼이라는 새로운 디바이스가 개발되어 한 때 펜티엄 3 기반의 노트북에 탑재되기도 했지만 상용화되지는 못하였지요.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의 등장
그러다가 컴퓨터계의 빅뱅이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바로 1995년 말, 팬티엄 프로세서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CPU가 노트북에 무슨 역할을 하는지 VGA는 왜 필요한지, 램과 하드디스크의 작동 원리가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해 도통 알쏭달쏭 하던 시절이었는지라 "지금껏 컴퓨터 무지하게 잘 만드는 회사가 무지하게 좋은 CPU가 개발했기 때문에 이전에 쓰던 486은 이제 쓰레기가 됬다우..."라고 떠들어 대던 TV, 신문, 잡지 등에 그만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펜티엄'이라는 새로운 괴물이 등장하자 그간 금송아지처럼 보였던 센스 5800이 갑자기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퇴물로 둔갑해버리고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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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년으로 접어들자 인텔 펜티엄 CPU를 탑재한 모델들이 하나둘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의 고민 끝에 저는 팬티엄 90MHz라는 엄청난 CPU를 장착하고 10.4 인치의 대형 TFT 칼라 액정에 램을 자그마치 16MB나 단 삼보의 모빌라이트 V를 구입하고 말았습니다.
그 전까지 출시되었던 센스 5900까지는 광학 드라이브 없이 FDD만 갖추고 있었지만 이 모델은 FDD는 물론 8배속의 CD-ROM을 내장하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모델명이 ML530T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대략적인 사양은 펜티엄 90MHz, 8MB( 최대 확장 용량 40MB) 메모리, 810MB 하드디스크, 10.4 TFT 800*600 디스플레이 등이었습니다.
이 모델부터 저는 세운상가에서 용산전자상가로 구입처를 옮겼으며 96년 2월쯤 기본 8MB인 메모리를 16MB로 업그레이드하는 조건으로 340만원을 지불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인터넷 사용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에 노트북 PC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컨텐츠 경로로는 단연 CD-ROM 타이틀이 가장 많이 이용되었으며 당시 유명했던 컨텐츠 업체로는 '솔빛미디어'가 대표적이었습니다. 그 중에 노트북 구입시 번들로 제공되었던 '세계를 가다'라는 타이틀을 아주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이후 120MHz로 CPU가 강화된 모델이 출시되었지만 외형을 비롯하여 사양에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기변의 욕구를 한동안 자제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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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시 x86 계열의 프로세서가 인텔 제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AMD, 사이릭스, 비아 등의 후발 업체들에서도 시장 표준이 될만한 획기적인 제품들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특히 그 중에 사이릭스사의 약진이 돋보이기도 하였지요. 아마 오래된 노트북 유저들께서는 '사이릭스' 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수 있으실겁니다.
사이릭스는 1995년 10월에 펜티엄과 호환성을 가지는 6x86(코드명 Cyrix-M1)을 발표하였습니다. 사이릭스는 기존의 6x86 시리즈와 차원을 달리하는 7x86 시리즈로 기준 사양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CPU 코어로'고성능' CPU 바람을 일으킨 의욕적인 업체였습니다. 사실, 사이릭스 CPU의 성능에 대해서는 다소 말이 많았었지요. 하지만 꾸준한 업그레이드와 낮은 가격대의 CPU를 무기로 한 때 PC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기도 했습니다.
사이릭스가 시도했던 기술 중에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미디어 GX였습니다. 프로세서 안에 그래픽과 사운드를 넣어 칩셋의 간결화를 이루기 위한 꽤 진보적인 시도였지만 이 아이템은 그만 실패를 거두고 말았습니다.
후발 출시 제품의 안정성과 인텔의 독점체제 그리고 지속적인 기술 개발의 부재 등으로 사이릭스는 내셔널세미컨덕터(NS)에서 인수되었고 이후 VIA에 의해 선보인 사이릭스III 프로세서를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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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한동안 잠잠해진 제 기변 욕구를 다시금 불러일으킨 기종은 그 이름도 유명한 센스 500이었습니다.
1996년 말에 첫선을 보인 센스 500시리즈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사이즈였던 12.1인치 TFT 액정 - 물론 800*600 - 을 탑재하였고 역시 초대용량에 해당하는 16MB의 기본 메모리와 6배속 CD-ROM, FDD를 모두 갖추고 있었던 불세출의 역작이었습니다. 거기에 16비트 스테레오 사운드, 고용량 니켈수소 배터리, PCMCIA II~III 슬롯을 탑재한 강력한 기종이었습니다. CD-RPM과 FDD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47.5mm의 적당한 두께를 유지하고 있어 당시 노트북 사용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던 제품이었습니다.
이정도면 당분간 아무런 불만 없이 사용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얄굿게도 삼성은 1997년 봄, 센스 500에서 FDD와 CD-ROM을 탈착식으로 변경하고 두께를 3.9cm로 줄인 초슬림 - 당시로서는 - 모델을 내놓아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12.1인치의 액정에 펜티엄 150MHz의 강력한 CPU, 10배 광학 드라이브를 갖추고 있고 있었으니 기변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대만산 국산 등을 오가는 정도의 소박한 기변 수준에서 멈췄어야 했었는데... '외산노트북'이라는 복명을 만나면서부터 그야말로 "패가망신"(?)의 길에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부터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 노트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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